바이팅루의 사라졌던 입이 갑자기 다시 생겨났을 때, 자오쉐청은 뉴 기술자에게 자구책을 찾아보라며 다그치고 있었다.
자오쉐청 역시 현재 상황을 가장 먼저 추측하던 참이었고, 가상 인간 행세를 즐기는 이 납치범의 위험성을 의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자오 팀장은 절망한 뉴위가 심문실에서 벗어나 바깥을 겹겹이 둘러싼 ‘좀비’들의 추격을 뚫고, 지하 1층의 중앙 통제실로 진입해야만 방화벽을 재가동해 건물 관리 권한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을 때도 그의 낙담 가득한 태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오쉐청은 겉보기에는 그다지 다정다감해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성격이 조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고, 의외로 인내심도 있었다. 부하가 이런 상태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뒤에도, 뉴위에게 화를 내지 않고 세부 사항 하나하나를 캐물으며 빈틈없이 가능한 돌파구를 찾아나갔다.
바이팅루는 말을 할 수 없는 동안 옆에서 조용히 머릿속으로 기억해 두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드러난 홀로그램 건물의 구조와 입체 지도를 모두 머릿속에 정리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 한 것이다.
기둥 두 개만 있어도 목발 한 쌍은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미신을 믿고 허둥대던 뉴위도 조금씩 침착해졌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어요. 우리의 관리자 권한이 박탈됐습니다. 설령 중앙 통제실 문 앞까지 순간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해도, 문을 열지 못 할 수도 있어요.”
바이팅루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생각에 잠긴 채 무심코 대꾸했다.
“괜찮아요. 방법은 항상 어려움보다 많은 법이니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오쉐청과 뉴위가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말할 수 있게 됐어?”
“입이 다시 생겼다고?!”
바이팅루는 잠시 멈칫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입을 만져 보려던 순간, 그녀의 온몸이 이상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분명 의식은 이곳에 있는데, 몸이 반란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두 동료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바지 주머니에 들어갔고, 입도 허락 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 놈이 제한을 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지금 이 틈을 타서 빨리 로그아웃해!”
말이 끝나자마자 귀신이라도 들린 듯 몸을 끌어당기던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자기 몸과 씨름하던 바이팅루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팽이처럼 반 바퀴를 돌더니 “쿵” 하고 심문실 벽에 부딪혔다.
바이팅루는 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려다 문득 멈춰섰다. 현실 속 자신의 진짜 손이 느껴진 것이다!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바이팅루는 자신의 상태를 불러왔다. 언제부터인지 감각 차단율이 50% 아래로 떨어져 있었고, 이제는 바깥의 환경 소음까지 들릴 정도였다!
누군가가 그녀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홀로그램 캡슐 경고등이 꺼졌어요!”
“움직였다! 손을 들었습니다!”
“무슨 상황이야? 자오 팀장쪽은 왜 안 되는 거지? 그럼 배터리부터 분리해 봐도 되는 거 아니야?”
“모르겠어요. 아직 홀로그램 건물의 통제 권환을 회복하지 못 했습니다…… 일단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샤오바이 맞지? 샤오바이, 들리나? 지금 홀로그램 세계에서 나올 수 있겠어? 가능하면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나와!”
“리 국장님은 대체 어디서 이런 지원군을 데려온 거죠, 너무 대단한데……”
주변이 소란스러웠지만 바이팅루는 단편적인 몇 마디만으로도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납치범 해커가 공격을 받고 있어서 이쪽을 신경 쓸 여유가 없는 틈에, 어떤 정체불명의 고수가 계정 탈취 방식으로 그녀의 감각 커버율을 회복시켜 준 것이다.
이렇게 과감한 스타일은 아무래도 이쪽 사람의 방식 같지는 않았다……
맞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계정을 탈취한 사람이 그녀의 주머니도 한 번 만지지 않았던가?
바이팅루가 손을 넣어 보니 주머니 안에 반투명한 작은 카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그 위에는 아주 단순하고 투박한 명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만능열쇠.holoarc.
바이팅루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온몸이 괜히 근질거렸다. 카드의 글자가 가운데로 정렬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각 자오쉐청은 계정을 탈취한 사람이 남긴 말로 그가 외부 지원군이라는 사실을 판단한 상태였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계정 탈취 방어 시스템이 침입자를 쫓아낸 뒤 원래 계정의 상태를 새로고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감각 차단율 확인하고,”
자오쉐청이 재빨리 말했다.
“내려갔으면 얼른 로그아웃해.”
바이팅루가 머뭇거렸다.
“멍하니 있지 말고, 나갈 수 있으면 빨리 나가.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마!”
바이팅루는 참지 못 하고 손에 든 카드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비전문가라도 파일명과 확장자만 보면 이것이 무슨 용도인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동한 그녀는 카드를 손바닥에 붙인 채,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던 심문실 문에 대고 한 번 내리쳐보았다.
다음 순간, 틈조차 없는 듯했던 그 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이팅루는 즉시 결단을 내렸다.
“중앙 통제실로 갑시다!”
“중앙 통제실 권한 회복됐습니다! 방화벽이 재가동됐어요!”
“사람들은? 사람들은 어때!”
“사람들은 괜찮습니다. 셋 다 무사해요. 감각 커버율 하강 중, 홀로그램 캡슐 온도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빨리, 빨리! 구급차 불러——”
중앙 통제실을 되찾는 데 성공한 세 명의 인질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고, 인간 세상은 뇌진탕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바이팅루는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숨을 고르고 있었고, 뉴위는 옆에서 이미 “우웨엑” 하며 속을 게워냈다.
십여 분 간 아수라장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바이팅루는 태어나 처음으로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오르는 경험을 했다.
눈앞에서 흔들리던 별들이 조금 흩어지자, 그녀는 손을 더듬어 힘겹게 가슴에 걸려 있던 시경을 찾아 썼다. 한참 만에 초점을 맞추고 대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그녀가 두헝에게 잘못 보낸 메시지가 맨 위에 떠 있었고, 두헝은 예상대로 물음표 하나만 보내고는 답장을 기다리다 그대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회사에…….”
바이팅루는 두 글자를 내뱉자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었다. 다행히 스마트 기기가 자주 쓰는 연락처와의 대화 패턴을 인식해 자동으로 ’회사에 일이 생겨서 잠깐 못 돌아갈 것 같아. 나 기다리지 말고 배달 시켜 먹어.’라는 문장을 생성해 보내 주었다.
“어, 뭐 하는 거예요, 뇌진탕인데 시경을 쓰시면 안 되죠!”
의료진이 고개를 돌리더니 투덜거리며 그녀의 시경을 벗겨버렸다.
“요즘 젊은 애들 인터넷 중독에는 정말 약도 없다니까!”
시경은 조용할 뿐, 보낸 메시지에 답이 없었다. 두헝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바이팅루는 눈을 감았다. 양쪽 귀가 시끄럽게 윙윙 울렸다. 그러나 머리는 아드레날린의 영향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녀에게는 묘한 직감이 들었다. 그 정체불명의 지원군은 자신을 알고 있다.
상대방이 그녀의 계정에 로그인했을 때 남긴 말은 기회가 생기면 빨리 빠져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협조해 줄 것이라고 기대도 하지 않은 듯 그저 손 가는 김에 한 번 구해 준 것처럼 굴었지만, 동시에 그 ‘만능열쇠’를 함께 남겨 주었다. 마치 그녀가 동료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지 못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친절하게 대안가지 마련해 준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사람은 물건을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는 그녀의 습관까지 알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큼은 우연일 수도 있었다. 오른손잡이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바이팅루는 자신의 인맥에 대해 그래도 어느정도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평소에도 언제나 일이 생기면 도와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었고, 집 아래의 국수집에서 국수를 한 그릇 먹어도 남들보다 고기 두 점은 더 얻어먹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 이런 고급 인맥이 있었던가?
게다가 일이 갑작스러웠던 만큼, 오늘 밤 그녀가 연락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두헝뿐이었다.
자기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의심스러운 그 룸메이트 말이다.
이건…… 설마……
도대체 그녀가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바이팅루는 자신이 들것에 실려 나올 때 귀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말소리를 떠올렸다.
“오늘 밤 이 사람은 대체 누구 인맥이에요?”
“몰라. 리 국장님 말로는 자기 쪽은 아니라던데…….”
“몇 분 사이에 계정을 두 번이나 탈취하다니 진짜 감탄스럽네요. 재화 거래 플랫폼에서 원래 계정을 그대로 밀어낼 정도면 은행도 털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신원 확인이 안 되면 일이 제법 커질 수도 있겠어요!”
“쉿, 헛소리 하지 마!”
“그건 그렇고 안에서 원격으로 로그인당했던 그 아가씨도 정말 대단하던데요. 반응이 얼마나 빠르던지 곧장 중앙 통제실로 가서 안팎으로 호흡을 맞췄잖아요! 저였으면 분명 벌벌 떨다가 바로 헬멧부터 벗어 던졌을 거예요. 맞다, 그 분도 6팀이에요? 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다행히 그 고수가 그 분을 선택했으니 망정이지 우리 뉴뉴를 골랐으면…….”
“우리 쪽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아마 그 사람밖에 못 골랐을걸. 자오 팀장이랑 샤오뉴는 둘 다 관리자 계정이었고, 그 사람만 ‘방문자’ 계정이었으니까.”
“저런 신선 같은 사람한테도 관리자 계정이랑 방문자 계정이 정말 차이가 있나요?”
물론 차이는 컸다. 두헝이 바이팅루의 계정에 원격으로 로그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이팅루의 홀로그램 헬멧이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기는 했지만, 바이팅루는 평소 생활에서 보안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편에 속했다. 그녀의 카드 지갑은 늘 현관 신발장 위에 걸려 있었고, 남의 결혼식에 갈 때나 꺼내는 금붙이도 벗으면 식탁 위에 휙 던져 두었다가 다음 번 대청소 때까지 그대로 방치했다. 인터넷 사용 기록을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녀의 홀로그램 헬멧에는 대량의 생체 정보는 물론이고, 자동 저장된 각종 비밀번호와 로그아웃하지 않은 시경 계정까지 남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걸 들고 그녀의 월급 통장까지 바로 털 수 있을 정도였다.
두헝은 지금 정말 한몫 털어 자신의 장례 비용을 미리 받아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선 그녀는 오늘 밤 홀로그램 세계의 온갖 요괴들에게 놀라 강제 로그아웃을 한 번 당했고, 이어 계정을 세 번이나 탈취하다가 시스템에서 세 번이나 튕겨 나갔다. 머리가 다 타서 야자 열매처럼 까맣게 그을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힘을 쓰는 일까지 했다. 먼 길을 오가며 홀로그램 장비 두 대를 한 곳에 나란히 옮겨 놓았고, 이제는 다시 침실 두 개를 가로질러 그것들을 원래대로 정리해 놓아야 했다.
절망적이었다.
두헝은 애벌레처럼 의자에 축 늘어졌다. 오장육부가 바닥에서 떼를 쓰며 구르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물이라도 마셔서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건 느끼한 남은 밀크티와 무정한 미네랄워터뿐이었고, 서러운 마음에 울어 버리고 말았다.
왜 자신이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예전에 이사하면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걸까?
바이팅루의 메시지는 확인했지만, 두헝은 지금 그 누구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전화까지 울렸다. 또 림보 공간에서 걸려온 스팸 전화였다.
지금은 옌닝 시각으로 새벽 세 시 반이었다. 두헝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 인간은 이제 막 해외로 나가 보이스피싱 업계에 뛰어들어서 아직 시차 적응도 하지 못 한 것인가?
하지만 그녀는 이제 손을 뻗어 전화를 끊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서러워져 눈물이 더 쏟아졌고, 바이팅루가 헬멧을 올려두는 작은 탁자까지 흠뻑 젖었다.
두헝은 마음속에 원망이 가득 차서 바이팅루의 탁자를 닦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전화가 울리다 자동으로 끊기더니, 곧이어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그제야 두헝은 예전에 피싱 문자를 보내려고 스팸 번호 하나를 화이트리스트에 등록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떻게 또 이놈이지? 정말 끝도 없구나!
분노에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가 휴대폰을 집어 들자,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하, 앞서 어떤 무례가 있었더라도 그것은 결코 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부디 제게 설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두헝은 말문이 막혔다.
‘두 각하’는 울음에 사레가 들려 헛구역질을 한 번 했다.
그녀는 회화가 서툰 유학생이 영어권 국가에 가면 셰익스피어 말투가 되기 쉽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중국어 초보자도 희곡의 대사부터 시작하는 줄은 몰랐다.
언어의 벽도 제대로 넘지 못 했으면서 바로 일선에 나와 사기를 친다고?
힘없이 가슴을 누르던 두헝은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두 번째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것인지 서양 판타지 번역체인지 모를 말투의 사기꾼은 이렇게 말했다.
“또한 제 쓸모를 증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헝은 움직임을 멈췄다.
이 메시지 뒤에는 열여섯 자리 코드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홀로그램 경찰서를 납치했던 그 문제의 가상 디스크의 코드였다.
그래. 인질은 구출해냈으니,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도 슬슬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상대는 친절하게도 30초 남짓 그녀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두헝은 바이팅루의 탁자 위에서 종이테이프를 몇 조각 뜯어 휴대폰의 카메라와 마이크 구멍 몇 개를 막은 뒤, 내장된 노이즈 캔슬링 소프트웨어까지 켜서 휴대폰에 주변 소리가 녹음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한 다음에야 전화를 받았다.
“각하, 지금의 당신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는 당신께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 될 것입니다.”
이어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용은 몹시 이상했지만 발음만큼은 분명했다. 성조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하는 외국인 같지는 않았고, 통역기를 쓴 것 같지도 않았다.—— 이 목소리는 굉장히 쇠약했다. 이따금 말을 힘겹게 이어나가기도 했고 가끔씩 부자연스럽게 끊기는 부분이 있어 기계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두헝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경계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전화 속의 상대방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예의 바르게 잠시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미래의 당신이 당신에게 메시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진작 받으셨겠지만, 지금까지도 림보 우편함을 확인하지 않으신 걸 보니 아마도 의심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다행히 미래의 당신은 무척 인자하시기에 제게 세 가지를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신뢰를 얻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째, 집을 옮기실 때는 웨러위안(悅樂園) 단지와 유주화위안(優築花園)은 고려하지 마십시오. 웨러위안 단지는 저렴하지만 철로 바로 옆에 있어 소음이 매우 심합니다. 유주화위안에서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한 리모델링 집은 확실히 정말 예쁘긴 합니다만, 옆집에 이웃을 자주 괴롭히는 정신질환자가 살고 있는 것을 중개업자가 숨겼습니다.”
두헝은 차가운 표정으로 바이팅루의 휴지를 마구 낭비하며 듣고 있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오늘 밤 휴대폰을 보며 집을 알아본 것도 사실이었고, 룸메이트가 없어도 되는 더 저렴한 곳으로 이사할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에 봐 둔 곳도 정말 그 두 군데였다. 하지만 그녀가 어떠한 흔적를 남기지 않았다 한들 검색 기록은 빅데이터에 잡히기 마련이니, ‘취향을 맞춰 추측하는 것’ 정도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둘째, 당신은 밀크티를 싫어합니다.”
휴지를 뽑던 두헝의 손이 멈췄다.
잠깐. 이건…… 빅데이터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밀크티를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잔은 시켜 먹었고, 눈치 없는 배달 플랫폼은 그녀에게 ‘밀크티 타노스’라는 칭호까지 붙여 주었다. 심지어 경찰 룸메이트조차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서 ‘반복 구매 시 반값 할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그녀의 몫까지 한 잔 더 사다 줬을 정도였다.
두헝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누군가와 잡담하다 무심코 말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누군가에게 그렇게 깊은 속내를 말할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여전히 저를 믿으실 수 없으신 겁니까?”
그녀가 여전히 침묵하는 것을 눈치채자 허약한 목소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래의 당신은 제게 경고했습니다. 만약 제가 세 번째 사실을 말하면 당신은 저를 믿게 되겠지만, 동시에 저를 죽여 입을 막고 싶어질 거라고요. 부디 믿어 주십시오.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결코 무례를 범할 의도도 없습니다.”
두헝은 이미 눈물과 콧물이 멈춘 상태였다. 그녀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새벽 4시, 8층에 모기가 있습니다.”
두헝은 “찌익” 소리와 함께 휴대폰의 통화용 마이크에 붙여 두었던 테이프를 떼어 냈다.
순간,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다니, 물귀신을 기르는 두 개의 우물처럼 칠흑같이 음산한 물안개를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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