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러(李長樂), 옌닝시 공안국에서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고 있는 홀로그램 부서의 임시 책임자는 주말 한밤중에 직접 홀로그램 청사로 달려왔다.
리 국장은 올해 예순셋으로, 앞으로 5년만 더 버티면 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이미 새하얗게 세어 이제는 염색하는 것도 귀찮아진 지 오래였고, 평생의 소원은 과학기술이 조금만 천천히 발전해서 정년 퇴직이 자꾸 미뤄지지 않게 되는 것과 이 나이에 매일같이 온갖 신종 사건들을 마주하며 하늘을 향해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나”하고 말없이 한탄하는 일이 더는 없게 되는 것이었다.
기술 경찰들은 큰 적이라도 만난 듯 사람을 가둔 세 대의 홀로그램 캡슐을 둘러싸고 있었다.
홀로그램 캡슐 세 대는 끊임없이 경고등을 깜빡이며 누구든 감히 가까이 다가오기만 하면 곧바로 전류를 흘려 헬멧 속 세 사람의 머리를 꿰뚫어 버리겠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좀 전에 납치범이 인질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 것은 바이팅루가 말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이제 막 도착한 구조대원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리 국장은 지친 얼굴로 부하들에게 당장 초안을 작성해 홀로그램 캡슐 사용 안전 규정을 개정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납치범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들어야 했다.
리 국장이 보고 있는 화면은 두헝이 계정 도용 방지 시스템에 의해 강제 로그아웃되기 전에 보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컴퓨터 화면에서는 세 명의 인질뿐 아니라, 일방향 유리 너머로 납치범을 대신하는 얼굴 없는 가상 인간도 볼 수 있었다.
얼굴 없는 가상 인간은 화면 밖의 리 국장을 ‘바라보는’ 듯 고개를 돌려, 침착한 태도로 단도직입적이게 말했다.
“그 철거 계획을 중단하고, 폭발로 파손된 집을 복구한 뒤, 왕쉬가 자연사하기 전까지는 두 번 다시 ‘설득’이라는 방식으로 그를 괴롭히거나 떠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그리고 내 캐리어 디스크를 그에게 돌려주고 다시는 우리를 방해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하세요.”
리 국장은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자신은 사이버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인데 왜 여기에 앉아 철거에 대항하며 버티는 주민을 상대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직도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납치범이 재차 말했다.
“인간은 언제나 약속을 어긴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저는 당신들이 동의한다 하더라도 추가적인 보장이 필요해요.”
맞은편 건물에서 온 협상 전문가가 물었다.
“어떤 보장을 원합니까?”
“한 시간 안에 인터넷 안전 및 정보화 위원회, 공안, 국가안전국의 데이터베이스에 내 설치 패키지를 탑재하고, 정보보안 취약점 데이터베이스의 업데이트 권한을 나에게 개방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 세 개의 뇌는 다시는 당신들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나는 그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인터넷에 공개할 거예요.”
말을 마친 납치범은 협상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연결을 끊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머리에 뿔이 네 개 달린 사슴의 그림자만이 남아 있었고, 그 뿔은 한 시간짜리 카운트다운 표시판을 가리키고 있었다.
“리 국장님.”
한 홀로그램 경찰이 빠르게 다가왔다.
“금요일 밤, 왕쉬는 우리쪽 사람이 베이청(北城) 분국 형사3팀으로 인계시켰습니다. 왕둥양이 진술을 마친 뒤에도 그는 조사에 협조하기 위해 남아 있었고, 그동안 계속 분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전자기기는 전혀 만진 적이 없습니다.—— 가상 인간 공포증 때문에 휴대폰조차 갖고 있지 않았거든요.”
리창러는 밤보다도 더 검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는 자신의 가상 인간 캐리어 디스크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물어봐도 전혀 모른다고만 했습니다. 입을 열면 계속 자신의 가상 인간이 통제를 벗어나 살인 괴물이 되었다고만 말하고요. 동급생이 죽은 뒤로는 홀로그램 계정에 로그인 할 엄두도 내지 못 했고, 가상 인간만이 계속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 괴롭혔다고 합니다. 왕쉬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학교에서도 친구가 거의 없고, 성적도 평범했습니다. 해킹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과 접촉한 흔적도 찾지 못 했고요.”
“그럼 그 가상 인간은 어디서 났지?”
“오래전에 폐품 수거장에서 주운 캐리어 디스크라고 합니다.”
“출처는?”
“모른다고 합니다. 캐리어 디스크에는 일련번호가 있었을 텐데, 문제는 그 디스크가 샤오뉴의 홀로그램 캡슐 안에 있어서 저희가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왕쉬를 데려올까요?”
부하를 바라보던 리창러의 이마에 주름이 한층 더 깊어졌다.
“불러와서 뭘 어쩌려고?”
“어…… 상대가 내건 요구가 전부 그와 관련된 일이니, 왕쉬를 데려와서 직접 납치범과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어떨까 해서요.”
리창러는 그 멍청한 생각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인질 셋으로도 부족해서 하나를 더 갖다 바치자는 거냐? 머리를 좀……”
그때 기술수사대에서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리 국장님, 어차피 왕쉬도 자신의 가상 인간을 무서워하고 있는 거라면, 가상 인간의 소유권을 우리 쪽으로 넘기게 설득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의 말대로 가상 인간이 통제를 벗어났더라도, 주종 관계라는 바인딩이 남아 있으면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훨씬 커질 겁니다.”
리창러는 순간 멈칫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시야 끝으로 화면 위의 카운트다운 표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벌써 5분이 지나 있었다.
바이팅루는 마침내 전기 충격의 여파에서 조금 회복했다. 팔다리는 아직 말을 듣지 않았지만 머릿속의 생각만은 날아갈 듯 빠르게 돌아갔다. 납치범은 갑자기 전기 충격을 가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마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지원이 도착한 건가?!
이렇게 빨리? 설마 두헝이 신고한 걸까?
바이팅루는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이성을 되찾으며 스스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저 해커는 인질극을 벌인 이상 분명 요구 사항이 있었을 테니, 아마 그가 직접 경찰과 접촉했을 것이다.
그래, 이 모호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반쪽짜리 메시지를 보고 그녀 쪽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설마 두헝이 미성년자의 엄마라도 된 것처럼 한밤중에 그녀의 동료와 상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가며 행방을 묻고 다녔을리는 없지 않겠는가?
바이팅루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니…… 그러지 말아줘. 그녀의 룸메이트는 지금도 이미 귀신처럼 충분히 무서우니, 귀신에 빙의돼서 우정 출연까지 해 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 지금은 더 귀신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 그녀 자신의 얼굴일지도 몰랐다. 샤오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바이팅루는 자신의 입과 혀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 두 기관이 없었던 것 같았다. 심리적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숨쉬는 것조차 그리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입이 봉해지기 전에 했던 말들을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별로 잘못 말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 해커 납치범은 그녀가 더 이상 말하지 못 하게 한 걸까? 마치…… 그녀에게 설득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저 해커는 계속 왕쉬의 가상 인간인 척 연기하고 있었어. 말하는 내내 왕쉬를 위하는 것처럼 굴었고.”
두헝도 밤새 지켜보며 얻은 잡다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쉬는 그저 무고한 피해자일 뿐 범죄자가 아니었다. 경찰과 그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그를 잘 보호하는 것 자체가 원래 경찰의 일이 아닌가? 만약 바이팅루가 계속 말을 이어나가게 두었다면, 왕쉬 본인도 듣고 흔쾌히 받아들였을 테고 ‘갈등’은 곧 해결됐을 것이다.
이제 두헝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왕쉬는 그저 해커 납치범이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구실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왕쉬였을까?
두헝은 말단의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아 차가운 손가락을 세게 비비고 있었다.—— 바이팅루가 나갈 때 물을 끓여 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그녀에게는 마실 따뜻한 물도 없었고, 그저 마찰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두헝은 납치범이 요구 사항을 말하고 있을 때, 림보 공간의 계정 도용 방지 시스템에 의해 강제 로그아웃되어 그 뒤의 내용을 듣지 못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시각이 있었다.
오늘날 인공지능 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칩이 대부분의 합법적인 지적 노동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제 파출소 경찰처럼 매일 현장에 나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움직여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노동집약형’ 직종에 속하게 되었다.
오직 규정에 맞지 않거나 인공지능이 법에 따라 수행을 거부하는 일만이 사람을 찾아 직접 맡겨야 하는 일이 되었고, 세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틈새를 파고드는 자’라고 불렀다.
두헝이 주로 하는 일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평소에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첫째로는 그녀가 정말 노동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문제에 휘말리는 게 싫어 위험한 일은 아예 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불법적인 행위를 아주 잘 알아야 했다. 그래야 위험한 낌새를 맡자마자 곧바로 몸을 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범죄자들이 못된 짓을 할 때는 경찰을 피해다니기 마련이고, 공개적으로 경찰을 도발하는 자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불린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요구 때문에 모든 것을 건 미치광이이거나, 아니면 더 큰 목적을 노리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인질로 잡힌 세 경찰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두헝은 진심으로 그 납치범이 후자이길 바랐다. 만약 경찰을 공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녀로서는 정말 손 쓸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법이 없는 일은 두헝도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단 납치범에게 목적이 있다고 가정하고, 자신을 애써 그 입장에 대입시켜 왜 왕쉬와 그의 캐리어 디스크를 노렸는지 생각해보려 했다.
그녀는 방금 계정을 도용했을 때, 멍하니 서서 가상 인간이 미쳐 날뛰는 것을 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두헝은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가능한 한 왕쉬의 각종 생체 정보를 수집했고, 그의 몸에도 엿보기 거울 하나를 심어 두었다.—— 물론 그런 복잡한 생체 정보는 수집해 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가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약점 몇 가지는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왕쉬가 자신의 가상 인간과 바인딩할 때 사용한 것은 홀로그램 PC방의 낡은 장비였다는 점이다. 그런 구식 장비는 오래전에 도태되어 중고로 팔아도 십 위안도 못 받을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는 하필 이런 ‘늙은 소’ 같은 기기로 샤오루라는 ‘고물차’를 묶어버린 것이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산물은 이후 시중에서 정식으로 판매된 제품과는 달랐다. 샤오루의 바인딩 프로토콜은 두헝이 과제를 할 때 자료실에서 검색해 베껴 넣은 것이었으니, 빈틈이야 체보다도 더 많을 게 틀림없었다.
만약 납치범이 공공의 안전과 경찰 세 명의 목숨을 맞바꾸자는 요구처럼 지금의 경찰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면, 경찰은 인질의 안전 때문에 함부로 해커를 공격하지 못 하는 상황 속에서 우선 해커의 신원을 추적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납치범이 남긴 유일한 단서는 왕쉬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열아홉 살에 사회적 관계도 단순하고, 머리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이 청년에게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경찰은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별다른 수가 없으면, 결국 그에게 가상 인간의 권한을 넘기라고 요구해 가상 인간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캐내려 할 것이다.
두헝은 비비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맞다, 홀로그램 거래 플랫폼.
체감상 홀로그램 세계는 또 하나의 현실 세계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현실처럼 한 손에 돈을 들고, 다른 한손에 물건을 들어 맞바꿀 수는 없었다.
인터넷 쇼핑과 마찬가지로, 홀로그램 세계의 재화 거래에도 플랫폼이 필요했다. 거래 과정에서 플랫폼은 잠시 동안 거래 물품의 임시 바인딩 권한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사이에는 손을 쓸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크게 존재했다.
어찌되었든 그 가상 디스크는 오래된 실험실의 시제품에 불과했으니까.
두헝은 곧바로 자신과 바이팅루의 홀로그램 기기 두 대를 한곳으로 끌어다 컴퓨터에 연결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왕쉬의 홀로그램 계정에서 계정 도용 방지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해서 그녀에게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의 홀로그램 PC방의 기기든, 왕쉬가 이후 사용하던 중고 헬멧이든 모두 시장에서 퇴출된 고물이었다. 이런 오래된 기기로는 하드웨어의 한계 때문에 재화 거래 시 대조해야 하는 복잡한 생체 정보를 일부 수집할 수 없었다.
이는 비유하자면, 왕쉬가 플랫폼에서 재화를 거래할 때면 언제나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정밀하지 못 한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문은 열렸다. 그런데 이때, 다른 ‘열쇠’가 하나 더 나타난 것이다. 겉보기에는 수상하지만, ‘정품 열쇠’에는 없던 톱니가 한두 개 있다면, 거래 플랫폼의 인증 시스템에는 작은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죽은 말을 산 말이라 생각하고 살려 보는 수밖에.*’
두헝은 휴대폰 속,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는 바이팅루와의 대화창을 힐끗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살리지 못 하면 그때는 네 운명에 맡기는 거고.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중국의 속담으로, 안 될 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너무 정신없이 움직인 나머지 시간이 가는 것도 느끼지 못 했다. 이십 분 뒤, 두헝은 엿보기 거울이 보내온 정보를 받았다. 왕쉬가 홀로그램 계정에 로그인했는 것이었다.
일이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두헝은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곧바로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홍채가 형광빛을 반사하며, 늘 초점이 잘 맞지 않던 그녀의 눈이 서늘하고 차가운 빛을 띠었다.
왕쉬는 시키는 대로 순순히 한 홀로그램 경찰을 따라 접속했다.
그는 이제까지 이런 최신 장비를 만져 본 적이 없었다. 로그인할 때에도 거의 어지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볍고 멍한 상태로, 그는 한때 자신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세계로 얼떨결에 돌아왔다.
홀로그램 세계에는 쓰레기도 없고, 역겨운 술과 담배의 냄새도 없으며, 길가의 낡은 건물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소음도 없었다. 또한 언제든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질 듯한 질책과 폭력도 없었다.
왕쉬는 한때 이곳이 자신의 탈출구가 되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홀로그램 세계는 그에게 현실보다도 더 무서운 악몽이 되어버렸다.
신고하러 가기로 결심하기 전날 밤, 그는 어릴 적 베껴 두었던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문장들을 작은 공책에 정성껏 옮겨 적고는 그것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글쓴이들이 말한 대로 용기를 끌어모아 적극적으로 행동하려 했다.
그들은 ‘세상은 용감한 사람에게 보답한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그 ‘보답’은 정말 빠르게 찾아왔다. 그는 행동에 옮기자마자 하루만에 매를 맞고, 가출을 하고, 체포될 위기에 처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일을 모두 겪었다.
세상이 용감한 사람에게 내려 준 ‘보답’은 결국 하나의 진실뿐이었다. 사람에게는 정말로 출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인간 세상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도 그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서워하지 마.”
홀로그램 경찰은 사람이 제법 좋은 편인지 계속해서 그를 다독여 주었다.
“바인딩만 풀면 너랑은 더이상 상관없는 일이 될 거야. 더는 누가 감시할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어.—— 가상 인간 거래도 다른 물건을 거래하는 것과 절차가 똑같아. 평소에도 직접 만든 홀로그램 공예품을 팔아 본 적 있지? 먼저 가방 안에 있는 가상 인간 계약서를 꺼내봐. 찾았어?”
왕쉬는 단번에 그것을 찾아냈다. 홀로그램 세계에서도 그의 물건은 얼마 되지 않아서, 값어치 없는 여행 기념주화 몇 개와 팔리지 않는 수공예품들을 제외하고는 외롭게 남은 계약서 한 장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쓸데없을 만큼 낭만적으로 꾸며지기 마련이었고, 가상 인간 계약서에도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돌이 풍화되고, 창해(滄海)가 밭이 되며, 별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나는 너와 영원히 함께하리라.
이 얼마나 끔찍한 감언이설인가.
“왕쉬?”
그가 너무 오래 망설인 것인지 거래 요청을 보낸 홀로그램 경찰이 한 마디 재촉했다.
“다 됐어?”
왕쉬는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끌어낸 뒤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고 거래 확인을 눌렀다.
시스템은 거래 환경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재화 거래 플랫폼의 강력한 보안 시스템은 모든 수상한 움직임을 찾아냈고, 왕쉬의 몸에 붙어 있던 엿보기 거울도 곧바로 탐지되어 제거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엿보기 거울의 주인에게도 알림이 전달되었다.
동시에 가상 인간의 소유권을 넘겨받으려던 홀로그램 경찰은 경악했다. 왕쉬의 낡은 계약서가 그의 손을 벗어나 허공으로 떠오르고도 평소처럼 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양피지 질감의 계약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커다란 핏자국이 번져 나와 두 줄짜리 거짓된 맹세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그리고 그 핏자국 속에서 사람의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홀로그램 경찰은 황급히 거래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거래는 이미 동결되었고, 거래 물품은 무효 처리되어 있었다.
곧이어 그의 발밑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래 플랫폼이 공격받고 있었다!
계약서 위의 피투성이 귀신 얼굴이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홀로그램 경찰국을 납치한 그 납치범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나는 거래할 수 없는 물건이야. 거래한다는 건 나를 버리는 거야, 왕쉬.”
귀신 얼굴이 납치범의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그러면 안 된다고.”
홀로그램 경찰의 마음속에서 크게 경보가 울렸지만, 그는 보고할 틈도, 입을 열어 왕쉬에게 당장 로그아웃하라고 외칠 틈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계약서 위의 피투성이 귀신 얼굴이 종이에서 튀어나와 흉측한 사람 머리로 변하더니, 곧장 왕쉬를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그 때, 왕쉬의 모습이 한순간 흐려졌다.
이어서 방금까지 순종적이던 청년은,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귀신이 들린 것처럼 순식간에 눈빛과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홀로그램 경찰은 온몸의 피가 사지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이 돋아 머릿속의 산소가 죄다 닭살로 새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는 그리고 나서야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귀신이 들린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계정 도용이잖아!
오늘 밤 사이버 귀신 소동이 연달아 벌어진 탓에 사고방식까지 엇나가 버렸다…… 법을 무시하는 미친놈이 홀로그램 공안국을 점거한 데 이어, 이번에는 경찰의 눈앞에서 대놓고 계정을 도용하는 놈까지 나타났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홀로그램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최근 몇 년 동안은 홀로그램 공간의 보안도 크게 향상되었다. 계정 도용 사건 역시 거의 듣지 못 했거니와 접속 중인 본인을 강제로 밀어내는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저 범법자들은 어떻게 이런 짓을 해낸 걸까? 3D 프린터로 왕쉬를 하나 더 복제하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벌어졌다. 현장의 홀로그램 경찰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도 미처 파악하지 못 했는데, ‘복제판 왕쉬’가 손가락을 살짝 뒤집더니 어느 틈에 손가락 사이로 나타난 카드 한 장을 앞으로 내던졌다.
카드는 소이비도(小李飛刀)*처럼 피투성이 귀신 얼굴을 향해 날아가 박혔다. 마치 무협 영화의 특수효과 같았다!
*구룽(魏龍)이 쓴 5부작 무협 소설 시리즈.
홀로그램 경찰은 눈을 크게 떴다. 하늘이여,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우리 편이었구나.
그런데 저 아군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 등장이 이렇게 화려할 수 있나?
하지만 ‘복제판 왕쉬’는 한마디도 할 틈 없이, 카드를 던지자마자 원래 계정과 행동 패턴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계정 도용 방지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로그아웃되었다.
귀신 얼굴에 꽂혀 있던 종이 카드도 녹아 사라졌다. 하지만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우리 하나가 생긴 듯, 귀신 얼굴을 그 안에 가둬 버렸다.
“납치범이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홀로그램 청사에서 가상 인간 거래를 감시하던 기술자들도 연이은 돌발 상황에 모두 어인이 벙벙해졌다.
“리 국장님, 어디서 이런 외부 지원을 구해오신 겁니까?”
리창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무슨……”
“리 국장님, 저 여성 동지의 홀로그램 캡슐 좀 빨리 보세요!”
리창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바이팅루’라는 젊은 경찰이 들어 있는 홀로그램 캡슐에서, 조금 전까지 위협적으로 번쩍이던 경고등이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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