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걸 선보일 힘도 없는 뉴 기술자는 심문실 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모든 물건과 상호작용을 시도했다. 그러다 끝내 낙심한 상태로 벽 모퉁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셋, 아무래도 내일 아침까지 갇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자오쉐청이 차갑게 말했다.
“내일은 토요일이야.”
뉴위는 절망적인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시들어 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바이팅루가 얼른 수습하듯 덧붙였다.
“괜찮아요. 주말에도 당직은 있을 테니까요. 몇 시간만 지나면 날도 밝을 거고.”
자오쉐청과 뉴위는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바이팅루가 물었다.
“설마 주말에는 아, 아무도 없나요?”
상식적으로는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부서는 아직 창설 단계인지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었고, 당직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다른 부서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쪽 사람들이 굳이 3층까지 올라와 형사수사부의 홀로그램 캡슐이 꺼져 있는지 켜져 있는지 확인해 줄 리는 없었다!
바이팅루는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품고 말했다.
“저는 룸메이트랑 같이 살고 있긴 한데, 평소에도 야간근무가 많아서 밤에 안 들어가는 일이 잦았거든요. 그래서 룸메이트가 저를 찾아줄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어요. 두 분은요? 밤새 집에 안 들어가면 가족분들이 찾지 않으실까요?”
뉴위는 넋이 나간 눈으로 대답했다.
“전 룸메이트들이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요……”
자오쉐청은 간결하게 답했다.
“혼자 산다.”
좋다. 이 셋은 모두 실종자가 되기 딱 좋은 인재들이었다.
왜 이 넓은 세상 속에서 하필이면 이 세 사람 같은 천살고성(天煞孤星)들이 서로 만나 부딪치게 된 걸까?!
두헝도 이중 감시망 너머로 왕쉬의 계정을 통해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바이팅루만큼은 구조 요청 메시지가 잘못된 화면으로 전송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약 메시지가 제대로 전송됐는지 확신이 없는 정도였다면 바이팅루의 말투는 이보다 훨씬 더 낙관적이었을 것이다.
그래,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할 때 “네가 좋으면 나도 좋고, 다 좋다”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녀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순간, 두헝의 답답한 마음이 다시금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일순 자신이 다른 일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 들어왔다는 사실도, 미지의 세력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것 같다는 의심도 잊어버렸으며, 눈앞의 공포영화 같은 장면에 돋았던 소름조차 모두 가라앉아 버렸다.
두헝은 자신이 십 년 동안 성에를 제거하지 않은 낡은 냉장고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그녀는 분한 마음에 속으로 생각을 곱씹었다.
‘두고 봐, 오늘은 반드시 네 얼굴에 한 방을 먹여줄 테니.’
두헝에게 ‘기대할 수 없는’ 바이팅루는 금세 또다른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갇혀 있는 건 길어 봐야 토요일 밤까지일 겁니다. 야간근무가 있어서 제가 무단으로 결근하는 걸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테니까요.”
출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혹시 어디 한구석에서 돌연사를 하더라도, 무단결근을 확인하러 온 사람이 시신이라도 수습해 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바이팅루는 속으로 은근슬쩍 좋은 일을 가늠해 보았다.
‘이건 미래의 상사와 함께 고난을 겪는 기회잖아. 흔들다리 효과에 어느정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면접에서 한 표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겠지.’
그러자 더욱 낙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바이팅루의 사회성으로는 침울한 표정의 상사 앞에서 함부로 팔짝팔짝 뛰며 좋아할 일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마음속으로 품은 은근한 기쁨을 동력으로 바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사진 벽을 그대로 남겨 둔 건, 아무래도 우리에게 일부러 보여 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바이팅루는 뉴 기술자가 차마 보지 못 했던 사진 벽으로 다가갔다.
“왜일까요?”
자오쉐청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옮겨 쳐다보았다. 그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왕둥양뿐이었기에 곧바로 질문했다.
“빨간 가위표가 그려진 여성과 아이는 오늘의 사망자겠지. 다른 사람들은 다 누구야?”
“왼쪽 위의 첫 번째 사진, 똑같이 빨간 가위표가 그려진 노란 머리는 장샤오톈이라고 해요. 난저우 직업고등학교의 학생인데, 지난달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죽었죠. 왕쉬가 신고할 때 자신의 가상 인간이 죽였다고 했던 사람이에요. 아래쪽 사진 몇 장에 담긴 젊은 애들은 전부 장샤오톈을 따라다니던 패거리들입니다. 왕둥양의 가족 사진 아래의 노인들은 아마 왕쉬 새어머니의 부모님일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몇 사람은……”
바이팅루가 잠시 말을 멈췄다.
“저도 확신은 없어요. 공식 홈페이지의 증명사진이랑 이런 일상 스냅사진이 너무 달라서요. 그냥 느낌이 조금 비슷해 보이는데, 아마 왕쉬의 집이 있는 그 일대의 철거 이주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같아요.”
자오쉐청이 멈칫했다.
“너희는 오늘…… 아니, 어제 아침에서야 신고를 접수한 거 아니었나? 게다가 곧바로 사건을 종결했을 텐데, 꽤 많이 알고 있네.”
사실 바이팅루는 왕쉬 집의 가스 폭발 사건과 처참한 현장 소식을 듣게 된 순간, 윗선에서 사람이 내려올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류 소장의 성격이라면,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자기네 파출소 사람을 내세워 얼굴을 알리게 할 것이 틀림없었다. 기회는 매끈한 머릿속에서 미끄러져 나갈 수 있으니 텅 빈 머리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이팅루는 집에서 현장으로 달려가는 길에 미리 왕쉬의 학교에 연락해 자료를 한 차례 수집해 두었다.
왕쉬의 새어머니 쪽의 가정 상황이나 철거 담당 직원들의 정보 같은 것은, 방금 전 홀로그램 총수사대로 오는 길에 제자에게 부탁해 조사한 것이었다.
다만 자오 팀장 앞에서는 그저 성실하고 소박한 사람처럼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일을 꼼꼼하게 해 둬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는 사람의 눈치를 읽는 데 능한 바이팅루는 자오 팀장의 살짝 치켜올라간 이마에서 ‘호감도 +1’이라는 신호를 읽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 셋은 운이 없다고만 생각했지,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깨닫지 못 한 상태였다.—— 바이팅루가 입꼬리를 누르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정리한 뒤, 사망자 장샤오톈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어?”
그녀가 시험삼아 손을 뻗자, 뜻밖에도 그 사진을 떼어낼 수 있었다.
“이 사진이 어떻게……”
그것은 한 장의 야경 사진이었다. 아직 청년이 죽기 전으로, 그는 수상쩍게 카메라 렌즈와 마주보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건설 폐기물이 널려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안전모 착용 구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 있었다. 사진의 한쪽에는 초 단위까지 표시된 시간도 찍혀 있었다.
2YY61125 23:04:25.
순간 바이팅루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그녀는 이것이 사건 현장의 감시 카메라 캡쳐 화면이며, 장샤오톈이 죽기 직전에 찍힌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샤오톈 사건은 다른 관할 구역에서 일어난 것인지라 바이팅루 쪽에서 담당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건 현장의 감시 카메라 영상은 경찰이 모두 수거해 봉인했을 것이라는 점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이 해커의 능력이 대단해 경찰의 데이터베이스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인 걸까, 아니면…… 그 카메라가 당시 이미 탈취당한 상태였던 걸까?
왕쉬가 했던 정신 나간 듯한 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떠올랐다. 고작 1초 정도 되는 순간이었지만, 바이팅루는 흔들릴 정도로 동요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자오쉐청도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어느 부서 담당이었지? 당시에는 못 알아챘나? 그리고 이 사건은 어떻게 바로 사고로 결론 난 거야?”
“바이화완 북대로(大路) 파출소에서 출동한 사건이에요.”
바이팅루가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공부’를 정말 철저히 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장샤오톈은 사고가 나기 전에 자신의 불량 패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 공사 현장의 어느 감시 카메라가 고장 났는지 알고 있으니 몰래 들어가 철근을 훔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그가 말한 감시 카메라는 실제로 고장 나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리되지 않아 시공사가 벌금까지 물었죠. 그런데 그날 밤은 공교롭게도 그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모두 알리바이가 있었고 현장에도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철근을 훔치다 발생한 사고라고 판단한 겁니다.”
뉴 기술자의 상상력은 이미 줄이 끊어진 연처럼 변해 척 보기에도 하늘 끝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가늘고 긴 몸에서 끓는 주전자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감시 카메라가 정말 저절로 고장 난 걸까요? 사망자가 보낸 메시지는…… 정, 정말 본인이 보낸 거예요?”
자오쉐청은 정말 질릴 지경이었다.
“또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사람의 귀에 음산한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혔네요.”
바이팅루는 흠칫 몸을 떨었고, 샤오뉴는 그 한마디에 거의 혼이 빠져나갈 뻔했다.
자오쉐청이 매섭게 소리쳤다.
“누구야?!”
사실 그 목소리는 무섭기보다는 매우 듣기 좋은 편에 속해, 방금 막 빙하를 떠난 싼장위안(三江源)*의 물처럼 맑고 청량했다.
“공사장의 CCTV는 제가 망가뜨린 게 맞아요. 오류로 표시된 메시지도 제가 가로챘고, 그 천박한 인간이 보낸 메시지 역시 제가 위조했죠.—— 제 이름은 ‘샤오루’, 왕쉬의 홀로그램 파트너예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장강, 황허, 란장강(메콩강)을 말함.
겨우 매달려 있던 두헝의 마음도 그대로 하수구에 처박혔다.
그녀는 눈을 감고도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카라 딜런*의 목소리였다.
실제 사람의 목소리는 저작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특별 콜라보 모델이 아닌 이상 시중의 가상 인간들은 모두 기계 합성 음성을 사용했다.
비상업적인 학생 과제 같은 것만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성 패턴을 대충 복사해 쓰는 정도였다.
상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두헝은 이 ‘샤오루’가 정말 그 시절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믿어버릴 뻔했다.
*북아일랜드의 가수.
하지만 그건 당연하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9년 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현재로도 ‘자아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은 여전히 공상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런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세운다 한들 투자조차 받아내기 힘든데, 학생 한 명이 손수 만들어 낼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것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학생이.
게다가 단순한 감정 모듈 하나에서 수억 년의 진화를 거쳐 생겨난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2병에 걸린 아이들 정도였다. 두헝도 당시에 그 과제를 직접 실행해 본 적이 있었지만, 다른 동기들의 엉성한 결과물보다 헛소리 기능이 하나 더 붙어 있었을 뿐이었다.
이 해커는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렸길래 이렇게 기괴한 역할극을 하는 걸까?
바이팅루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반응이 재빠른 편인지라 곧바로 상대방의 역할극을 따라가며 질문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당신이 장샤오톈을 죽였다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어떻게 죽인 거예요?”
“그들은 당시 완전히 자동화된 건설 현장에서 실습하는 중이었어요. 저는 샤오쉬의 휴대폰을 통해 장샤오톈이 동료에게 ’이 물건들을 가져가서 팔면 새 헬멧 하나는 살 수 있을까?’하고 묻는 걸 엿들었죠. 저는 그게 제법 좋은 생각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근거리 통신망을 이용해 공사장 안전 책임자의 시경에 침입했고 일부 권한을 얻었어요. 그런 다음 최근 장샤오톈과 충돌이 있었던 무직 청년의 번호를 사용해 그를 공사장으로 불러내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자고 했죠. 동시에 장샤오톈이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가로채고, 그를 목표 구역으로 유도해서 매달려 있던 철근을 떨어뜨렸어요.”
세 명의 경찰과 엿듣고 있던 두헝은 일제히 입을 다물지 못 했다.
특히 두헝—그녀는 공포영화를 가장 싫어했다—은 영상을 볼 때도 반드시 댓글을 켜놓고 친절한 네티즌이 ‘곧 무서운 장면’이라고 알려 주기만 하면 곧바로 피해 버리는, 당 태종보다도 충고를 잘 듣는 사람이었다.
한밤중에 이런 상황을 마주한 두헝은 마약을 끊을 때나 낼 법한 의지력을 짜내 겨우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자오쉐청도 이 정신 나간 해커가 지어낸 이야기를 따라가며 질문했다.
“너는 네가 가상 인간이라고 했지. 그럼 누가 네게 살인을 명령했나?”
“제 자신이에요.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쳤으니 벌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누가 네게 해킹 기술은 ‘먹여준’ 거지? 네 주인인가?”
스스로를 ‘샤오루’라고 지칭한 해커가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스스로 학습했어요. 경찰번호 XXXXX의 자오쉐청 씨, 하나만 물을게요. 어째서 왕쉬가 이 일에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차분했지만, 이상하게도 바이팅루는 이유 없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생명줄보다 말투가 더 단단한 자오 팀장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런 뜻이 이니에요. 통상적인 질문도 무관한 사람의 혐의를 배제하기 위한 거죠.”
해커는 침묵에 잠겼다. 어느 한쪽 구석에서 시선을 쏘아 보내며 정말로 그들을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바이팅루는 방향을 바꿔 보려 했다.
“그러면 자율 학습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정말 대단하네요. 시중에서는……”
“또 무엇을 알아보려는 거죠, 경찰번호 XXXXX의 바이팅루 씨?”
“아니에요. 긴장하지 마세요. 왕쉬 집의 가스 폭발 사건은 저희가 조사를 마쳤고 왕둥양도 이미 연행했어요. 당신도 분명 알고 있겠죠? 솔직히 말해서, 오늘 밤 당신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형식적으로만 한 번 검사하고 당신을 바로 왕쉬에게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해커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까, 당신이 우리를 여기에 가둔 것에는 다른 목적이 또 있는 거죠?”
바이팅루는 사진이 가득 붙어 있는 벽을 힐끗 바라보았다.
“혹시 그들의 집이 철거되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마치 잘난 척하는 경찰을 일부러 애태우려는 듯, 해커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 집은 세상에서 샤오쉬에게 유일하게 남은 공간이에요. 그의 집이고, 그는 팔고 싶어 하지 않죠. 하지만 당신들은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어요.”
“이건 정말 저희 일이 아닙니다. 오해한 거예요!”
곧바로 바이팅루의 민원 응대 모드가 발동했다.
“철거는 저희 소관이 아니거든요. 철거 방안이 불공정하거나 나쁜 사람이 부당이득을 챙기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혹시 그런 상황을 발견했나요?”
해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왕쉬가 감정적으로 차마 놓지 못 하는 거네요, 그렇죠? 이런, 저도 이해해요. 누구라도 아쉬울 겁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친엄마까지 모두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가장 힘든 시절을 이 집에 의지해 버텨 왔을 텐데, 낯선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 집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겠죠. 그렇지 않나요?”
해커는 가수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바이팅루는 속으로 이 목소리가 어딘가 귀에 익다고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룸메이트 핸드폰에서 하루 평균 여덟 번씩 울리는 머리 감으라는 알람 소리와 비슷한 걸까?
“하지만 우리에겐 이성이 있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 한들 결국은 낡고 망가지기 마련이에요, 그렇죠? 다른 물건이라면 낡아진 걸 그냥 잘 보관해두면 그만이지만, 집이 위험 건물이 되는 건 농담이 아니에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동네의 생활 환경도 점점 나빠졌고요. 철거에 좋은 점이 없었다면 왜 이웃들이 다들 그렇게 기뻐했겠어요? 왕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 점에서는 우리도 당신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그를 위한 거예요. 이제 왕둥양도 잡혀갔으니 철거 보상금을 노릴 사람도 없을 겁니다. 보상금은 전부 왕쉬 한 사람의 것이 되는 거죠. 어머니가 남겨 주신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뀌는 거예요. 어머니가 남겨 주신 낡은 집이 새집으로 바뀌는 거잖아요. 좋지 않나요?”
옆에서 지켜보던 두헝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설득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옛것이 가야 새것이 온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그녀도 자기자신처럼 평온한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매일 정신없이 휘말려 숨이 막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자오쉐청과 뉴위도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는지, 순간 경외심마저 들어 감히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 했다.
오직 그 해커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말 말을 잘하시네요.”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죠.”
바이팅루는 이 해커와 왕쉬의 관계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왕쉬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니면 당신이 직접 전화해서 제가 방금 한 말을 전해 주는……”
그녀의 말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마지막 한 마디가 아직 입안에 반쯤 머물러 있던 그 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이팅루의 입이 사라져버렸다. 코 아래에는 텅 빈 턱만 남아 있었다!
민원 상담 다큐멘터리가 순식간에 심령 공포영화로 변했다. 바이팅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의 홀로그램 캡슐에 침입한 해커는 감각 차단율만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동료들에게 경고할 방법이 없었다.
다음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온몸 곳곳의 근육이 한꺼번에 경련을 일으켰다.—— 전기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것이 홀로그램 세계의 유사 신경 자극인지, 아니면 해킹당한 홀로그램 캡슐이 정말 누전된 것인지조차 일시적으로 구분할 수 없었다!
두헝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비록 배후에 있는 해커의 위치를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왕쉬의 권한을 이용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캐리어 디스크를 원격으로 교란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곧바로 홀로그램 세계는 동작 패턴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감지해 다중 생체 정보 인증을 작동시켰고, 그녀를 강제로 로그아웃 시켜버렸다.
오늘 밤 두 번째로 거칠게 강제 종료된 두헝은 이제 담즙 말고는 더 이상 토해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왕쉬의 계정에도 ‘위험 경고’가 붙어 자동으로 ‘안전 모드’에 진입해버렸다.—— 다음 로그인부터는 여러 생체 정보를 인증해야 했다.
정말 귀신이라도 본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림보 공간이 이렇게 예민한 피부처럼 굴기 시작한 것인가? 손 한 번 든 게 그렇게 이상한 행동이었나?!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바이팅루 일행은 왜 그리 고집스럽게 강제 종료를 하지 않는 걸까? 홀로그램 총수사대의 장비가 순금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인가…… 잠시만.
짧은 순간, 두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공격을 받았는데 그들은 왜 감각 차단율를 낮춰 통증을 줄이지 않았을까?
설마 가상 인간을 연기하는 그 해커가 정말로 홀로그램 캡슐을 누전시킬 수 있는 건가?
이 놈은 사이버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거였다!
정말 그렇다면 헬멧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고, 밖에 있는 사람들조차 전원을 끊는 방식으로 이 사이버 인질범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두헝처럼 강제 종료만 해도 구토하는 허약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러한 결함 투성이 인류 아종들을 보호하고자 홀로그램 장비 안에는 내장 배터리로 정전에 대비하는 기능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질극이라면 범인에게는 반드시 요구 사항이 있을 터였다. 두헝은 자신이 신고하지 않았더라도 납치범 쪽에서 이미 경찰과 접촉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렇다면 이 인질범의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홀로그램 청사 3층을 이미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도 그 점을 알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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