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궁문이 닫혔습니다. 위지령칙의 말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는 찰 형제가, 그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지켜봤습니다.
미진이 움직였다. 그는 천주를 받쳐 들고, 동굴을 빠져나온 흑룡처럼 찰작에게 다가섰다. 천주는 살짝 서늘했는데, 그것은 천주 본래의 온도가 아니라 찰작의 손끝에서 전해져 온 것이었다.
장도 몇 자루가 그의 배를 찔렀습니다. 그가 땅에 무릎을 꿇었을 때는 이미 기력이 다한 상태였습니다.
찰작의 손끝이 계속해서 천주를 밀어 올렸다. 천주는 미진의 인문을 문지르며 지나가더니, 그 미미한 서늘함을 머금은 채 아래로 미끄러졌다. 향기는 아주 미약했으나, 그렇기에 되려 미진이 끝없이 다가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위지령칙이 말했다. 뒤에서 다시 심장을 꿰뚫렸습니다.
미진의 정신은 꼭 취한 사람처럼 흐릿하고 어지러워, 갈피를 잡지 못 하고 비틀거렸다. 그는 발작할 적이면 진짜와 가짜조차 분별하지 못 했지만, 그 서늘함과 향기만은 신명의 단비처럼 차례차례 그의 마음 위로 내려앉았다.
나를 생각하고 있었어? 미진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입을 벌려 그 말에 대답할 뻔하였다.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었느냐, 내가——
찰작이 손끝의 힘을 살짝 풀자 천주가 미끄러져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그의 시선과 말투는 한결같이 가벼웠다.
“이번에도 내가 너를 때려야 할까?”
분명 천주가 떨어졌지만, 그는 이 정도의 거리만으로도 미진의 마음을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듯 여전히 미진을 직접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네 그 정도 힘이면,”
미진은 찌를 듯이 코끝을 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그는 향기에 이끌려 찰작의 손에 넘어갈 듯하였으나, 그 무거운 눈동자 속에는 사람을 덜덜 떨게 만드는 분노의 잔재가 가라앉아 있었다.
“나를 쓰다듬는 것이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찰작은 웃었다. 그는 오직 미진에게만 웃어 주는 듯했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황금화 두 송이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미진의 얼굴에 떠오른 인문를 하나하나 세어 보려 했다. 그러나 미진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가는 아래에서 삼청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험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그 손을 자신의 뺨 위에 가져다 댔다.
향기가 미진의 코끝에 번졌다. 미진은 힘을 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찰작이 손을 움츠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살짝 고개를 틀자, 뜨거운 숨결이 전해졌다. 이 순간 발작할 적의 엉망인 모습이 죄 드러나며 찰작의 손끝으로 전해졌다.
“태자,”
찰작은 그 숨결에 뜨거워진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는 그를 구태여 태자라 부르며 말했다.
“음과 양은 각자의 자리가 있으니*, 제게 이리 매달리지 마시지요.”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뉜 것을 의미한다.
“맥박은 멀쩡하고,”
미진의 손끝은 여전히 찰작의 손목을 짚고 있었다.
“심장도 아직 뛰고 있구나.”
“어쩌면 다 너를 속이려는 잔꾀일지도 모르지.”
찰작은 목소리를 낮춰 귀신 흉내를 냈다.
“오늘 밤 내가 널 찾아온 건, 사실 목숨을 거두러 온 거야.”
“칼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서.”
미진의 시선은 줄곧 그를 향해 있었다.
“그 두 손으로 나를 죽여라.”
어지럽게 흐트러진 숨결이 안개처럼 축축하게 찰작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스며들며, 무언가가 침범해 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탓에 찰작은 더이상 미진에게 붙잡혀 있고 싶지 않았고, 향기를 맡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이 달아나려 하기만 하면, 미진은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싫어.”
찰작은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비늘로 날 건드리지 마.”
“참 귀에 익은 말이구나.”
미진의 뺨 위에 올라온 인문은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비늘을 찰작의 손바닥에 비벼 대며 ‘싫다’는 말에 여러 의미를 뒤섞어 버렸다.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 너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냐?”
찰작은 인문이 스칠 때마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들이 닿을 때면, 미진의 힘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있는 힘껏 미진을 밀쳐 냈다.
“건, 드, 리, 지, 마!”
미진은 시원스레 대답했다.
“좋아.”
그가 손을 놓아주자 찰작은 몸을 웅크린 채 뒤로 물러났다.
실내는 어두웠고, 두 사람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찰작은 그가 또 미쳐 날뛸까 뒤로 물러섰지만, 다음 순간 이 망나니는 그의 발목을 붙잡더니 그대로 자기 몸 아래로 끌어당겨 버렸다.
자리 위에서 미끄러진 찰작이 힘겹게 반대쪽 다리를 들어 미진을 걷어찼지만, 미진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듯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미진은 그가 자기 배를 밟도록 내버려 둔 채, 재빠른 손놀림으로 찰작의 허리띠를 풀어 버렸다.
“미무야,”
찰작은 허리띠를 움켜쥐고, 아연함과 아득함이 뒤섞인 얼굴로 말했다.
“……너 미쳤……”
미진이 찰작의 직거를 벌리자 살구색 덧옷의 안쪽으로 흰색 곡령(曲領)*삼이 드러났고, 겹겹이 상처를 감싼 가슴과 복부에서 약 냄새가 곧장 퍼져 나왔다.
*깃이 둥글게 생긴 옷.
그날 궁문이 닫혔습니다. 위지령칙의 말이 또다시 미진의 머릿속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장도 몇 자루가, 뒤에서 다시 심장을——
미진은 갑자기 몸을 숙이곤 찰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실내는 까닭 없이 고요에 잠들었다. 찰작은 겹겹이 쌓인 옷자락 위에 누운 채, 의아한 눈으로 미진을 관찰하였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너무도 이상했다. 미진은 찰작의 상처를 보고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 사람이 자기 자신인 것 같은 얼굴을 하였다. 찰작은 이 표정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다.
“미무야.”
찰작은 어쩔 수 없이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미진을 부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상처가 너무 아파.”
‘아프다’는 한 마디가 미진의 심금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찰작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살짝 턱을 치켜들었다. 그는 허리띠를 놓고, 여전히 손가락에 감겨 있던 경식을 미진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두 손가락으로 황금화를 집은 채, 유리 화주를 가볍게 흔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약도 너무 써.”
미진의 포악함이 눈 속에서 은은하게 약동하였고, 그는 상처 입은 사람처럼 이 몇 마디 말에 붙들려 있었다.
“사람도 많은데, 칼은 길고, 아무리 죽여도 다 죽일 수가 없었어.”
찰작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번졌다.
“그 대머리가 제일 나빴어. 나를 난장강(亂葬崗)*에 버렸거든. 비는 계속 쏟아지고, 정말 숨이 끊어질 뻔했어.”
*연고가 없는 무덤이 마구 널려 있는 공동묘지.
그 말을 하는 동안, 미진은 그를, 상처를 만지고 있었다. 상처를 통해 서로를 느끼는 순간마다 찰작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침범당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찰삼청은 아주 공평했다. 미진이 난처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자신도 미진에게 상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찰작이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진이 면포를 풀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찰작에게는 가장 대담한 예외였다.
이 털뭉치 같은 존재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던 찰작은 문득 미무야가 그렇게 싫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 달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지?”
미진의 시선은 상처를 하나하나 훑은 뒤, 다시금 찰작에게로 옮겨 왔다.
“비가 그렇게 쏟아졌는데, 어떻게 혼자 성으로 돌아오려고 했어?”
“날 찾고 있었어?”
찰작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이렇게 큰 상처를 입고 어떻게 나 혼자 돌아오겠어. 그런데 마침……”
“마침?”
그는 너무 영리했기에, 삼청은 그저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시체를 처리하던 시인 하나가 돈 욕심을 내고 날 몰래 성 안으로 들여왔어. 그러고는 우면에 팔아넘겼지. 하지만 내 상처가 너무 심해서, 다들 괜히 무슨 일에 휘말릴까 봐 떠들지도 못 하고 떠맡지도 못했어.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한 상인의 손에 들어갔지.”
미진은 두 손으로 찰작의 허리를 받친 채 천천히 물었다.
“어떤 상인?”
바깥의 희미한 빛이 어스름했다. 미진의 잘생긴 얼굴은 빛을 등졌을 때 몹시 위험하게 보였다. 그가 정신을 차릴수록 난폭함과 냉혹함은 서서히 사라져 갔지만, 또 다른 비뚤어짐과 고집이 조용히 그의 눈빛 속에 숨어들었다. 그는 찰작의 눈동자를 집요하게 쫓으며 더욱 은밀하게 선을 넘으려 하였다.
“아주 이름난 거상이지.”
찰작은 손가락 사이의 황금화를 들어 올렸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날 살 수 있었겠어?”
“성격도 참 좋군.”
미진의 손바닥에는 위협적인 기색이 배어 있었다.
“그자가 네 ‘주인’ 노릇을 하게 내버려 두었나?”
“너도 하고 싶어?”
찰작은 약간의 솔직함을 내비치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너는 주인이 되어도 나한테 잘해 줄 것 같진 않은데.”
“그럼 그자는 괜찮고?”
미진은 자뭇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찰작의 옷을 원래대로 차근차근 입혀 주었다. 다만 그다지 부드러운 손길은 아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인가? 네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와서 날 막아설 만큼?”
“혹시 내가 몰래 널 보러 온 거라면.”
찰작은 경식을 쥔 채, 그가 자신의 허리띠를 매 주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요패를 찾는 것에 실패한 누군가가 여기저기 날 찾아다녔대. 미무야, 그게 누구였을까?”
“이제는 만났겠구나.”
미진은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야.”
찰작은 미진의 이런 점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찾으려 한 것일까? 원백성은 미진이 장도궁에 유폐되어, 남은 것이라곤 여두반낭이 전부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왜 그는 아직까지 죄책감을 품고 있는 것인가?
찰작은 의아해하면서도 그 문제에는 마음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애초에 오늘 밤 이곳에 온 것도 미진에게 약간의 ‘동요’를 주기 위해서였다. 원백성은 그가 감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데 있어 미진보다 한 수 아래라고 했지만, 찰작은 지금에 이르러 자신이 부족한 그 한 수야말로 미진이 저항하기 어려운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살 수는 없어. 하지만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 은혜는 갚아야지.”
찰작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너, 내 허리띠를 정말 못생기게 매는구나.”
“꽃매듭으로 묶어 놔도, 조금 있다가 또 풀 것 아니야.”
찰작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그렇게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이 털뭉치 같은 녀석을 놀려 먹기 시작했다.
“나가, 상처가 너무 아파.”
그는 정말 그를 나가라고 불렀다.
미진의 표정은 너무도 분명하게 변화했다. 그는 말을 하려다 도로 삼키더니, 찰작이 한참 동안 자신을 바라보자 갑자기 거친 손길로 허리띠를 다시 풀어 버렸다.
“그렇게 부르지 마.”
미진은 다시 허리띠를 매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도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손을 멈췄다. 그러나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해 버렸다.
“그냥 미무사라고 불러.”
“네 아명이잖아. 복성왕이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어.”
찰작이 물었다.
“왜 나는 안 되는데?”
“우리는 그만큼 친밀하지 않으니.”
미진은 허리띠 때문에 점점 마음이 어지러워져, 그것을 묶었다 풀고, 또 풀었다 다시 묶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설마 내가 너를——”
그렇다. 그가 찰작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찰삼청이라고 부르면 되잖아.”
찰작은 때맞춰 화제를 돌렸다.
“오늘 밤 네가 그 대머리의 초대에 응한 건, 사람을 돌려 받는 것 말고도 한몫 더 뜯어내려고 한 거지.”
위지량은 수백 필의 말을 메울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순순히 찰작을 내주었다면, 미진에게 절반만큼만 물어주고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위지량의 수중에 찰작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미진은 찰작과 공소견의 요패를 찾지 못 했고, 때문에 위지량이 사람을 숨겨 두었다고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손에 쥔 패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미리난이 그를 금족시키려 했으니 사실상 고립무원이었다. 어제 서도순이 거들어 주지 않았다면 오늘도 나올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자가 내 말을 가져갔으니,”
미진은 마침내 허리띠를 다 매었다. 하지만 꽃매듭은 맥 없이 축 늘어져 있어, 딱히 방금 전보다 더 나아 보이지도 않았다.
“내게 물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그를 때리면 안 됐어.”
찰작은 꽃매듭을 살펴보며 심술궂게 말했다.
“이렇게 되면 완전히 원한을 품게 될 거야.”
미진은 다시 몸을 숙이고는, 찰작이 고개를 숙인 틈을 타 두 손에 힘을 주어 병약하고 무력한 찰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가 손을 놓기 전에 도발하듯 말하였다.
“그래도 때려야겠어.”
“그를 때렸으니 그 돈은 절대 못 받게 될 거야.”
찰작은 스스로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경식을 미진에게 돌려주려 하였다.
“이따가 가기 전에 이건 다 먹고 가. 안 그러면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이런 좋은 음식을 먹지 못 할 테니까.”
“네가 내게 대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미진은 경식을 받아 쥐더니, 찰작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순간 절반을 확 끌어당겼다.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찰작을 덮고 있었고, 눈빛과 말투에는 위압이 서려 있었다.
“지금 내가 너를 찰삼청이라 불러야 할지, 가게의 동복들처럼 ‘주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