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질 듯 얕은 숨을 헐떡이던 찰작이 사내의 손에 이끌려 외발 수레 위로 끌어 올려졌다. 그 사람은 그를 끌고 시체 더미를 벗어나 성문으로 향하였다. 길이 몹시 울퉁불퉁했고, 찰작의 상처가 진동에 다시 벌어져 수레 바닥을 따라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마음의 준비는 진작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사람은 서툴게 수레를 끌며 말했다.
“네 꼴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찰작은 제 창자가 다 쏟아져 나온 것만 같았다. 입을 달싹였으나 입안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는개* 사이로 싸락눈이 바스락바스락 떨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이전에도 난족(鸞族)**을 몇 본 적이 있다만, 십삼랑(十三娘)에게 듣자하니 너는 좀 별종이라더군.”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난(鸞)은 봉황과 비슷한 전설상의 영조(靈鳥)를 의미.
찰작은 뺨을 수레 바닥에 댄 채 입술을 달싹였으나,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처음엔 그 여자가 되는대로 헛소리를 내뱉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별종이었군.”
그 사람은 수레를 한참 더 끌고 가 황량한 벌판에 멈춰 세웠다. 자그마한 눈싸라기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마른 풀숲 사이로 푸른 눈을 번뜩이는 들개와 승냥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겁을 먹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다른 난족은 죄다 고통을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데, 너는 말이야, 소생을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게냐?”
찰작은 혀끝으로 핏덩이를 밀어냈고, 마침내 미약한 목소리를 내뱉을 수 있었다.
“……가……”
“서두르지 마라. 심문에 분명히 답하지 않으면, 너는 다시 그 난장판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
사내는 아예 품 속에서 가지고 다니던 연창(煙槍)*을 꺼내 들었다. 불티가 가물거렸다. 그가 화저자(火折子)**를 휙 집어던지자, 마흔다섯이나 마흔여섯쯤 되어 보이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십삼랑이 네가 되살아날 수 있는 건 세 번뿐이라고 당부하더군. 그녀가 처음 너를 주워 왔을 때가 첫 번째, 춘작(春芍)의 난이 있었을 때가 두 번째였으니, 오늘 밤이 아마 세 번째겠구나.”
*아편 연기를 빨 때에 쓰는 관.
**대나무 통 안에 불이 꺼지지 않는 불씨를 보관하여 언제 어디서나 쉽게 불을 피울 수 있게 만든 도구.
빗발과 우박은 더욱 촘촘해졌다. 사내는 입김을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세 번째 이후로는 너 역시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잘 들어라.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는 모두 사실대로 대답해야 한다. 거짓이 하나라도 섞여 있으면 널 이 수레에서 내던져 이 주변의 들개들이 배를 갈라 먹게 해 줄 것이니.”
싸락눈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찰작은 고통은 느끼지 못했으나 추위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되살아난 뒤부터 줄곧 손발이 떨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까지 달달 부딪히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로 수레 위에 웅크린 찰작의 모습은 제 나이만큼 작아 보였다.
“향낭은 네게 아우성에서 태자 미진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사내는 연창을 가볍게 두드리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도중에 마음을 바꿨지?”
“……동료가,”
찰작의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바들바들 떨렸다.
“……궁실로 숨어들어…… 미진을 죽이려 했어……”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 뒤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투로 대답했다.
“대처는 잘했구나.”
그는 ‘동료’라는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이 일을 네게 맡긴 것은 미라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라리 미진을 죽여 향령원을 혼란에 빠뜨릴지언정, 그 땅이 그대로 종고에 귀부하게 둘 생각은 없었으니.”
이 임무는 동북의 정세를 위한 것이었다.
최근 몇 년, 미리난이 바깥으로 세력을 넓히지 않은 것은 바로 미라가 그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라가 죽어버렸다. 미진이 수급을 바치는 것 자체는 큰일이 아니었다. 양진일주(兩鎮一州), 거기에 향령원까지 모두 종고에 귀부하는 것이야말로 큰일이었다. 찰작이 아우성으로 향한 목적은 미진이 머리를 바치기 전에 그를 죽이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찰작은 조직의 도움으로 신분을 위조하고, 위지량이 병력을 조정하는 틈을 타 천성 병사들 무리에 섞여 들었다. 그는 뜻대로 미진을 만났다. 그날 밤 동료들이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이 임무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도 바로 그 동료들이었다.
찰작과 그의 동료들은 본디 '구중(九重)'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다. 구중의 내력은 복잡했다. 찰작이 어린아이였을 적부터 그들은 끊임없이 분열하고 있었다. 조직 안에는 대진 섭 씨를 따르려는 이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 둘로 갈라진 그들의 아귀다툼이 그칠 새가 없었다.
사 년 전, 구중에서는 ‘춘작의 난’이 일어났다. 섭 씨파를 따르던 동료가 돌연 난을 일으켜 반섭파의 몇몇 주요 인물들을 잇달아 암살한 것이다. 하룻밤 사이 모두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각 주와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료들까지 서로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만에 구중에는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 찰작은 열네 살이었다. 그는 십삼랑과 헤어진 뒤 길거리에 남게 되었고, 몇 달 동안 열 번이 넘는 배신을 겪었다. 동료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 뿐 아니라, 비슷한 방식으로 타인을 심문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찾아다니며 명단과 암호, 그리고 다른 세력의 도움까지 이용해, 상대 진영의 동료들을 유인하고, 속이고, 협박하여 서로를 밀고하고 배신하게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속았는지 찰작은 이제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동료는 적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이 몇 년 동안, 그놈들은 줄곧 동부 각 부족의 분열을 꾀하며 미라 암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왔다. 미라가 죽자 십삼랑은 그들이 미진을 부추긴 게 아닐까 의심했지. 그런데 그들이 미진을 암살하려는 자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면, 그놈들 역시 미라에게 한 수 당했다는 뜻이겠구나.”
사내는 다시 한 번 입김을 내뿜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이제는 모두가 손 쓸 새도 없이 미라에게 허를 찔렸으니 공평해졌군.”
미진이 아비를 시해한 일이 정말 미라가 꾸민 일이었다면, 향령원의 귀부 또한 당연히 미라가 짜 놓은 수순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찰작이 경솔하게 미진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십삼랑에게 보고해야 했고, 그다음은 십삼랑이 참작하여 명령을 내려야 했다.
찰작의 입술은 종이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또다시 피를 두어 모금 토해 내고는 코로 희미하게 “응” 소리를 내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렸고, 심지어는 제 창자를 다시 집어넣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네 소생이 남들의 통각만 못 한 것 같구나. 고통을 알면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조금은 영리해질 수 있거든.”
사내는 담배를 다 피우고선 찰작을 돌아보았다.
“아까 너를 칭찬한 것은 십삼랑의 체면을 보아서였다. 너는 참 멍청하구나. 미진을 죽였어야지. 하나만 물으마. 미라를 본 적이 있느냐?”
찰작은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는 재차 흐릿하게 콧소리를 냈다.
“미라를 본 적도 없으면서, 십삼랑이 해 준 몇 마디만 믿고 그가 선의로 향령원을 귀부시켰다고 내기를 걸었구나.”
사내의 눈빛에는 연민과 조롱이 함께 담겨 있었다.
“찰삼청, 임무의 첫 번째 규칙은 그 어떤 사람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미라가 기세도명(欺世盜名)*한 겁쟁이였거나, 절망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멍청이였다면, 네가 이번에 미진을 살려 둔 일은 향령원 수십만 백성에게 큰 재앙을 부르는 셈이 된다. 두 번째 규칙은 필요할 때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동료도 처리할 배짱이 있었으면서 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진까지 함께 처단하지 못 했지? 어찌 되었든 향령원이 귀부하는 것은 미리난에게 분명 좋은 일인데 말이다.”
*세상 사람을 속이고 헛된 명예를 탐함.
여기까지 말한 사내는 한숨을 금치 못 했다. 그는 밤풍경과 안개비 속의 궁금(宮禁)*을 바라보았다. 삼라는 단잠에 빠진 산예(狶猊)**와도 같아, 얇디 얇은 싸락눈에 덮여 있지만 털끝을 곤두세우고 언제라도 매섭게 쏘아볼 듯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군주가 사는 궁궐.
**전설상의 맹수. 사자(獅子)와 비슷하게 생겼음.
“십삼랑은 대체 네게 무엇을 가르친 것이냐? 올해 열여덟이라 하였지? 그런데도 이리도 순진할 줄이야.”
사내는 다시금 화저자에 손을 뻗었으나, 비가 거세지고 우박이 굵어져 불을 붙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말을 이었다.
“큰일은 제쳐 두고 작은 일만 보아도 네가 미진을 살려 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미진이 어찌 했느냐? 그놈이 널 이용해 위지량과 수 싸움을 벌이지 않았느냐.”
찰작은 이전에 그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초췌한 몰골에 행색도 남루한 주제에 찰작이 여기까지 오며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을 제 손 보듯 훤하게 꿰고 있었다.
“놈들이 널 대주로 세웠으면 그 지위를 잘 이용했어야지. 위지량은 심사가 깊지만 의심도 많은 자다. 오는 길에 네 배경이며 내력을 몇 마디 적당히 꾸며 그를 구슬렸다면, 태자를 암살하려 하려 하기 전에 자기가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부터 걱정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지. 복성왕의 병사들이 아직 남아 있지 않느냐? 금명석은 더더욱 멍청한 사내다. 네가 항복하는 척하며 위지량의 속내를 조금만 흘려 줬어도, 그자는 어떤 방법을 써서든 널 지키려 했을 거다. 그는 복성왕에게 적을 더 만들어 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태자가 기화가거든 뜨거운 감자든, 동궁을 핍박했다는 구실을 위지량에게 넘겨주는 일만큼은 절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서도순. 겉으로는 소심하고 배짱이 없어 보여도 속은 아주 계산적인 자다. 상시로서 밤낮없이 미리난의 곁을 지키며 도륙왕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지. 그가 왜 직접 조서를 읽지 않았는지 아느냐? 미리난이 차마 미진을 죽이지 못할 것을 진작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오는 길에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여 일찍이 그와 같은 배를 탔다면, 설령 그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양쪽을 지켜보기만 하려 했다 하더라도 너 하나 살릴 방법은 찾아 주었을 거야. 너는 미진이 발작하는 와중에도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이니 말이다. 훗날 미리난이 미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서도순은 필시 너를 가지고 미진의 가치를 팔아먹으려 들 것이다.”
“살아남을 길이 이렇게나 많았는데도 무엇 하나 실천하지 않고 굳이 미진과 놀아나더니, 결국은 어떻게 됐느냐? 그놈은 아비를 죽인 죄를 짊어진 채 삼라에 들어왔고, 지금의 미리난은 그를 아끼든 아끼지 않든 냉대를 보여야 한다. 도륙왕이 이 생에서 가장 증오하는 것이 배신이다. 동궁 위랑들이 미진을 따르는 것도 그의 눈에는 미라를 배신한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미진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으니 동궁 위랑들에게 칼을 들이댈 수밖에. 너는 이렇게 뻔한 이치를 모른단 말이냐? 공부한 것들은 대체 어디에 갖다 버린 것이냐? 감히 동궁 요패도 차고 다니고. 이 녀석아, 목숨이 하나 더 있다고 기어이 낭비해야 속이 시원하냐?”
사내가 말을 마쳤을 즈음에는 싸락눈이 찰작의 얼굴을 절반 가까이 덮고 있었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잘못을 깨달은 것 같기도, 숨이 끊어진 것 같기도 하였다.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사내는 연창으로 찰작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정신 차려! 이번 일을 똑똑히 기억하거라. 놈들이 어떻게 권모술수를 부리고, 또 어떻게 네 목숨 하나를 짓밟았는지 말이다.”
찰작은 그 힘에 몸을 살짝 뒤집고 목울대를 움직이더니, 입을 벌려 비와 싸락눈을 받아먹었다. 꼭 죽어 가는 작은 물고기 같았다.
외발 수레가 다시금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모습은 어느새 안개비 속으로 희미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그는 수레를 끌며 마지막으로 찰작에게 물었다.
“죽을 때 더러운 것들을 몇이나 봤지?”
그가 말한 ‘더러운 것들’은 삼라귀 속에 숨어든 동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찰작은 젖은 입술을 달싹였다. 배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낮게 대답했다.
“……다섯.”
사내가 말했다.
“틀렸어. 열다섯이다.”
찰작은 제대로 셀 생각조차 없었다. 소생은 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큰 상처를 입은 상태라면 더욱 그러했다. 오늘 밤은 간신히 넘긴다 하더라도, 앞으로 반년은 골골거려야 할 것이었다. 빗물이 그의 눈썹을 적셨고, 그는 다시금 스스로가 이질적인 존재임을 실감했다.
착각일 수 있겠으나,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되살아나는 데에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십삼랑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정말 이것이 마지막 한 번일 것이다. 찰작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손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자객으로 살아가며, 고통을 느끼지 못 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무딘 일이기도 하였다.
사내는 제 남루한 겉옷을 벗어 찰작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 성문에 다다르자, 아는 사이였던 것인지 무지기가 누구를 싣고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품속의 연창을 긁적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가 산적놈들에게 팔려 버린 우리 집 멍청한 아들놈이네.”
그는 말을 마친 뒤 수레 바닥을 가볍게 한 번 툭 차며 이야기했다.
“아야라고 부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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