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유몽(有夢)
2026. 6. 12.

찰작은 종일 수행해 걸었으니, 밤에는 푹 잘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헌데 이제 막 걸음을 멈추고 쉬려 할 때 또 일이 터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까지도 여전히 공소견은 조금 주눅들어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찰작에게 물었다.

“저기 있는 동궁 위랑들은 어찌 우리를 자꾸 쳐다보는 것입니까?”

 

“우리가 삼라귀니까.”

찰작은 증병(蒸餅)* 입에 문 채 말했다.

“저들은 삼라귀를 싫어하거든.”

*떡가루에 콩이나  따위를 섞어 시루에 켜를 안치고  .

 

두 사람을 중심으로, 주위는 온통 동궁 위랑들이었다. 이는 새 요패가 빚어낸 오해였다.

 

지금은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각 부대의 병위가 길에 오르면 군량 배급에는 엄격한 몫의 규정이 따랐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은 응당 삼라귀로 구분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위지량이 세워둔 계획에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성을 나선 직후부터 삼라귀의 대오에는 그들 몫의 군량도 빠져 있었다.

 

본디 이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위지량이 식량 공급을 맡은 병참 역도(役徒)*에게 한 마디만 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대머리는 아무래도 그 일을 잊은 듯했다. 그는 애초부터 그들을 부득이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제는 삼라로 돌아가야 하니 두 사람을 단단히 쪼아대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이 이번 한 차례는 무사히 살아넘겼다 하더라도, 앞으로 그의 숨결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을 터였다.

*공역(公役) 부리는 사람.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공소견이 삼라귀에게 밥을 얻으러 가자, 그들은 두 사람이 동궁 위랑의 요패를 찼으니 응당 동궁 위랑을 따라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별 수가 없어 공소견은 동궁 위랑 쪽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용산은 사람이 바르고 옳아 구태여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성을 떠나기 전, 삼라귀와 복성 병위가 동궁의 말들을 빼앗은 일이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세 무리 사이의 앙금은 퍽 작지 않았다. 그들이 와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위랑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숲이 크면 온갖 새가 다 있다더니(林子大了,什麼鳥都有)*, 자리만 차지하고선 죽자 사자 달라붙어 밥을 얻어먹는 놈들도 있구나.”

힐문하기 시작한 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비꼬듯 말했다.

“낯짝이 두껍기로는 누가 우리 금위군을 당해내겠어.”

*세상에 별의 별 놈이 다 있다는 의미.

 

공소견은 좌불안석하여 머리를 증병 속에 파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본래라면 그는 한 끼에 증병 다섯 개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행여나 또 남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손에 든 반쪽짜리를 천천히 꼭꼭 씹고 있는 처지였다.

 

찰작은 이 사람이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화를 풀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배가 고팠다. 게다가 그는 그날 밤 미진을 확실하게 지켰다. 찰작이 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더라면, 동료 몇 명은 결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이 밥을 먹으며 떳떳하지 못 할 것이 없었다.

 

“웃지 마라. 저들은 양쪽을 다 챙기느라 어디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시니까.”

또 누군가 말했다.

“어쩌면 삼라에 들어가서 남 위에 군림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때 가서 우리를 주무르려 하면 손바닥 뒤집듯 쉬울 거고.”

 

공소견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여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형님들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요패는 본디 잠시 받은 것일 뿐입니다. 형제 둘이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쉽지 않은 것을요……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삼라에 도착해 우리가 봉록을 받으면, 길에서 먹은 군량 몫을 돈으로 환산해 형님들께 한 푼도 빠짐없이 갚겠습니다……”

 

그의 말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꺼낸 선의에 불과하였다. 허나 지금은 때마침 죽음을 자초한 꼴이니 어찌 일이 바라는 대로 풀릴 수 있겠는가?

 

“이제는 돈 이야기까지 하는구만. 정말 우리 형제들이 죄다 아첨꾼으로 보이나보지? 고작 너희의 그 밥값이 뭐라고?”

누군가가 조소했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면 왜 말은 돌려주지 않는 거지? 떠나기 전에 창고까지 싹 털어갔으니 그 위세가 참으로 위풍당당하더군. 갑옷과 병기들은 어떻더냐? 몇 사람 거쳐 팔아넘기면 우리 목숨값까지도 마련할 수 있겠구나!”

 

지금에서야 남들의 아랫사람이 된 그들은 삼라귀나 복성 위병과도 적잖이 다투었다. 그러나 태자의 위상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들이 태자를 떠받들지 않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동궁 위랑도 공경하지 않게 되었다. 며칠 전만 하여도 그나마 괜찮았다. 그때는 미리난의 태도를 알 수 없어, 모두가 태자에게 앞날을 걸어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야”라는 조서가 내려왔다. 그에 따라 예속(隷屬)들의 마음도 함께 흩어져 버렸다.

 

요 며칠, 수완이 있는 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속을 삭히고 있었다. 당장 태자의 아침저녁 일도 보장할 수 없으니, 떠나고 싶어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두 부대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대척한다 하더라도, 금명석과 위지량이 입을 열기만 하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절반은 떠날 것이 분명했다.

 

세상 일이란 본래 이러했다. 찰작은 증병을 먹고, 또 채저(菜菹)*를 먹었다. 태자의 목숨은 실낱같으니, 사람을 붙잡고 싶어도 분명 잡기가 힘들 것이다. 이른바 인의와 충심이라는 것은, 이익이 보장해 주지 않을 때에는 대개 입에 발린 말일 뿐, 큰 효력을 내지 못 하였다.

*채소 절임.

 

“개자식들.”

위랑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저들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 나중에는 또 형제들 몫에서 빠질 것이 아니냐! 앞으로도 갈 길이 이렇게 먼데, 외인에게 줄 식량이 얼마나 더 있다고!”

 

“형님들, 노여움을 푸십시오.”

공소견은 말주변이 서툴렀다. 조금 전에 한 말도 고심하여 머리를 쥐어짜 겨우 생각해 낸 것이었다. 이렇게 위랑들이 떼 지어 격분하는 것을 보자, 그는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

“우리, 우리……”

 

“누굴 보고 ‘우리’라고 하는 것이냐? 말도 군비도 내놓지 않는 주제에.”

누군가 그릇을 내던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형제들아, 저놈들의 그릇을 빼앗아라!”

 

어찌 그 대머리가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찰작의 혀끝에 남아 있는 채저의 호마(胡麻)*즙이 긴 여운을 남겼다. 대머리는 이곳에 장식품 둘을 놓아둔 것만으로도 사변을 일으킬 수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두 사람이 이곳에서 밥을 먹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처럼 보이겠으나, 실로는 자신들의 지금 처지가 분한 것이었다.

*검은깨나 참깨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그릇들이 휙휙 내동댕이쳐졌다. 또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찌 우리의 요패를 저들이 달고 있게 두는 것이냐? 그것도 빼앗아라!”

 

허리 옆을 움켜쥔 공소견은 그들이 흉포하게 달려드는 것을 보자, 혼비백산하여 더는 앉아 있을 수 없겠다 싶어 다급하게 외쳤다.

“이 요패는 장군께서 하사하신 것이며, 태자께서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녀석, 저들은 네가 바로 그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가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다!

 

동궁 위랑들이 “쏴악” 하고 모여들었다. 공소견이 먼저 끌려갔는데, 그는 아직 다 먹지 못한 증병에 미련이 남았는지 몇 대를 얻어맞고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흙먼지가 휘날렸고, 남은 다른 이들은 찰작을 찾아왔다. 찰작은 두말없이 단도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빛이 번쩍이더니, 단도의 “쿵” 소리와 함께 요패까지 옆에 박혔다!

 

“이게 무슨 짓이지?”

찰작은 여전히 새로 세운 울타리 위에 앉아 있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밤의 경치에 녹아든 두 눈 속에 불빛이 뛰노는 듯하였다.

“나는 밖에서 와 동궁 위랑의 규율은 모른다. 허나 우리가 이 밥을 얻은 것은 삼라귀의 체면을 보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호가의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이 군중의 귀에 떨어지자, 또 다른 한기가 피어올랐다.

 

“불쾌하다면 무슨 말이든 해도 좋다. 그러나 이 밥은 응당 내가 먹어야 할 것이니, 한 입이라도 줄어서는 안 된다.”

 

찰삼청의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며 모든 이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놓인 모닥불의 불빛에 따라, 단도 위의 단문(緞紋)*이 모양을 바꾸었다. 꼭 아스라한 빛 속에서 펼쳐진 은빛 깃털의 한 귀퉁이 같았다.

*수자직(繻子織). 옷감을 짜는 방법의 하나날실과 씨실을 서로 얽혀 짜지 않고 일정하게  올을 떼어서 짜는 방법으로 표면이 매끄럽고 윤이 나며 주로 양단공단 따위의 비단 옷감을   쓴다

 

일촉즉발의 긴장 속, 마침내 용산이 금명석 쪽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이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자 곧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굴고 있었다.

 

찰작은 이미 삼라귀로 돌아가 누워 있었다. 그는 칼을 그곳에 그대로 박아 두었다. 그의 요패를 빼앗고 싶다면 그리하여도 좋았다. 그럴 담이 있는 자가 있다면 가져가면 될 일이었다.

 

공소견은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아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고 찰작에게 물었다.

“우리가 잠든 틈을 타서 요패를 버려 버리면 어떡하지요? 잃어버리면 내일 어찌 길에 오릅니까?”

 

“너는 차라리 증병 두 개나 더 먹는 게 낫겠다.”

찰작은 머리 밑에 삼라귀의 덧옷을 벤 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그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시선이 온 하늘의 별무리를 스쳐 아주 먼 곳의 거가에 떨어졌다.

 

찰작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 밤 이곳에서 벌어진 것이 그저 말싸움뿐이라면 그는 못 들은 척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손을 쓰기 시작한다면, 누가 죽거나 다치든 상관없이 위지량은 그를 인정으로 삼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가 되면 태자는 치욕을 참으며 짐을 짊어질 테고, 대머리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만——그리고 마찬가지로 의지할 곳 없는 공소견만 재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초 미진이 두 사람에게 동궁 요패를 내린 것은, 첫째로 위협이었다. 찰작에게 그가 그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둘째도 위협이었다. 그가 그 대머리의 비뚤어진 속셈을 알고 있음을 위지량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한 자객이 동궁의 요패를 달았으나 또 삼라귀의 사람이기도 하니, 그의 신분은 양쪽이 밀고 당기는 관건이 되었다. 위지량은 분명 찰작을 죽이고 싶어 했다. 천성부의 병사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아서는 안 되었으나, 미진은 호가를 명분으로 기어이 위지량에게 찰작을 승진시키도록 강요했다. 찰작이 살아 있는 한, 태자의 손에 위지량의 약점이 잡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미진은 아직 패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은 어떨까?

 

찰작이 어젯밤 미진에게 당신은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미진은 일찍이 이 사람들과 수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유난히 삼라로 가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어떠한 대가도 아끼지 않았다. 오늘 밤 벌어진 소동 역시 어쩌면 태자의 예상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랫사람들의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 하고 있음에도 그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오로지 그가 이미 이 몇 명을 버리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일 수밖에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에는 과감히 결단해야 한다.

 

도륙왕은 그래도 운이 좋구나. 찰작은 눈을 감으며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한편, 그리 생각하였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서도 이렇게 젊은 맹호 한 마리를 직접 불러드릴 수 있다니.

 

찰작은 꿈을 꾸지 않는다. 그는 잠들면 곧장 어두컴컴한 암흑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소리도, 그림도 없으며, 자기자신조차 없었다. 그러나 미진은 정반대였다. 그가 잠든 곳에는 온통 꿈이 가득하였다. 그 속에는 과거의 것도, 혼란스러운 것도 있으며, 심지어 거짓된 것도 있었다.

 

늦가을 밤은 참으로 쌀쌀했음에도 미진은 그저 덥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휘장들이 그를 뒤덮고 있었다. 꼭 머리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피 같았다. 그는 경식들을 걸치고 있었다. 그것은 복잡하게 그를 휘감았다. 천주가 한 알 한 알 땅에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발작하는 소리를 들었고, 흔들리는 못 속에서 자신이 발작하는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원래 이리 추한 사람이었나요? 미진이 아야에게 물었다. 그는 드물게도 얌전하게 못 옆에 엎드려 있었다.

 

어디가 그리 추하느냐. 미라는 못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몸에도 경식이 감겨 있었다. 그는 못을 향해 자기 뺨을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네 아모(阿母)*는 내 이런 모습을 줄곧 영준하다고 칭찬했느니라.

*어머니.

 

……저는 이 무늬를 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미진은 한 겹 한 겹 쌓인 저주처럼 그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온 무늬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너는 마음을 잘 갈고 닦아야 한다. 미라는 몸에 달린 황금화를 떼어 냈다. 그런 일들에 노하지 말거라. 나가, 우리의 분노는 남들의 것보다 더욱 무섭다.

 

저는 그저 화가 납니다. 미진은 까닭 없이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야, 어째서 저입니까? 어째서——

 

온몸의 경식들이 소리를 냈다. 누군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긴 비단이 그의 얼굴 옆으로 드리워졌다. 그는 돌연 처음 발작하던 때처럼 눈물을 흘리며 지극한 고통 속에서 포효했다. 어째서 저입니까! 어느새 다가온 아버지가 두 팔로 그들을 품에 안았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미안하구나.

 

얼굴 위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고, 미진이 눈을 떴다. 그의 손에 감겨 있던 경식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황금화 두 송이가 호구(虎口)*에 걸려 곧 그를 베어낼 듯했다. 거가가 흔들릴 적마다 휘장이 움직였다. 바깥에는 다시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이 아우성을 떠난 지 며칠째인지 잊어버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

 

거가 양옆으로 누군가 말을 몰아 지나갔다. 서도순의 소달구지는 힘겹게 뒤따르고 있었다. 그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미진의 거가를 향해 외쳤다.

“태자, 어서 보십시오. 우리의 옛 도읍 삼라에 도착했습니다!”

 

미진이 휘장을 걷었다. 가까운 곳에 대열을 따라 달려 지나가는 찰작이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그 사람은 자기 허리의 요패를 들어 올려 미진을 향해 가볍게 튕겨 보였다.

 

빗물이 가늘게 튀었고, 그들은 또 눈이 마주쳤다.

 

찰작은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했다. 살을 에는 차디찬 시냇물이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듯한 곁눈질이 미진을 스쳐 지나갔다. 그 꽃 같은 눈꼬리가 느릿하게 말려 올라가며, 헤어지기 아쉬워 연연하는 듯한 가식을 그려냈다.

 

곧 두 사람의 길이 엇갈리며, 함께 웅장하게 우뚝 선 삼라성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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