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맥적(貊炙)
2026. 6. 9.

서도순은 여전히 땅에 엎드린 채 놀란 모습을 보였다. 이는 그가 가장 잘하는 연기이기도 하였다. 미리난을 이 년 동안 모신 그는 안색을 살피는 데에 가장 능한 사람이었다. 오늘 밤 미진에게 올린 이 몇 가지 요리들 중 적당히 숫자만 채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태자는 어젯밤 발작했다. 위지량 같은 치들은 그 속에 담긴 오묘함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서도순만은 내심 알아채고 있었다. 태자의 발작은 필시 아비를 시해한 탓이다. 대외적으로 미 씨의 병은 달의 모양에 영향을 받는 것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들을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들은 그것이 감정의 영향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도순은 미진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몇 가지 요리로 수작을 부린 것은 바로 미진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미진이 전부 먹는다면, 이 주인은 성정이 유약하여 성질이 없고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만일 미진이 한 입도 먹지 않는다면, 이 주인은 제 처지를 조금도 모르고 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금명석 같은 부류라는 뜻일 터였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서도순은 내심 득의양양해 하였다. 이 사람은 미리난과 같은 부류다. 타인이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채는 것을 싫어하고, 불쾌할 때에는 불쾌함을 드러내면서도 분수를 지킬 줄 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미진은 생선을 삼켜 자신의 태도를 전달하였으니, 더 이상 정세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화풀이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서도순의 마음 속에 만화경처럼 온갖 속셈이 떠올랐으나, 미진은 더이상 그를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태자는 찰작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쪽의 맥적(貊炙)*을 반으로 나누어, 오늘 밤 번을 서는 병사에게 하사하겠다.”
*통양구이.

 

“예, 소인이 곧 사람을 시켜 준비하겠습니다.”

서도순은 상반신을 조금 들어 올리며 근심스러운 듯 말했다.

“그럼 남은 절반은……”

 

“사람 하나를 불러 저미게 하면 되겠구나.”

미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한 손을 곡면빙궤(曲面憑几)*에 얹은 그의 시선이 여전히 찰작에게 못 박혀 있었다.

“저자에게 시키도록 하겠다.”

*굽은 형태의 목재 팔걸이.

 

동원은 음식을 여럿이 나누어 먹는 풍습으로, 사람 하나와 자리 하나를 모두 중히 여겼다. 삼라의 규제에 따르면 미진이 식사할 때에는 여덟 사람이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 아우성에 머무르고 있는 데다가 서도순이 데려온 시인 또한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태자를 모시는 사람은 네 명으로 줄어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조리에 능한 시인 하나가 계하(階下)*에서 대기하다가, 정묘한 칼솜씨로 고기를 알맞게 잘라 접시에 담는 것이 보통이다. 접시가 섬돌 위로 전해지면, 음식을 전담해 나르는 시인 하나가 그것을 궁실 안쪽으로 들였다. 궁실 내의 모든 사람은 반드시 신을 벗어야 했고, 걸어다니며 다른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었다. 접시가 주인의 자리 앞에 도착하면, 누군가가 그것을 한 번 더 나누어 줄**, 죽순, 부추, 순무 따위의 제철 채소와 곁들여 서도순의 손에 전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도순이 음식의 배합을 검수한 뒤 주인의 상 위에 받들어 올리는 것까지가 순서였다.

*섬돌이나 층계의 아래.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높이는 2미터 정도이며잎은 좁은 피침 모양이고 뭉쳐난다.

 

이 절차는 오직 구운 고기 하나에 해당되는 수순이었다. 생선회와 국, 면병(麵餅)*과 유락(酪) 또한 저마다의 절차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찰작의 절차는 아니었다. 그는 섬돌 아래에서 수색을 받고, 단도도 풀어 놓았다. 찰작이 신을 벗으려 할 때, 서 씨 성을 가진 그 상시가 그를 몇 번이나 훔쳐보았다.

*밀반죽하여 구운 빵의 일종. 

 

찰작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상대는 또 휙 시선을 거두었다. 찰작은 그 까닭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얼굴은 깨끗이 씻어내기만 하면, 감히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려 하는 사람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대다수가 체면을 걱정하는 것인지 사람들 앞에서 어리석게 치태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저자에게 비수(匕首)*를 주어라.”

미진은 찰작이 궤안 옆에 얌전히 앉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장 날카로운 것으로.”

*날이 예리하고 짧은 칼.

 

찰작은 고분고분하게 눈을 내리깔고 서도순에게서 비수를 받아 들었다. 이러한 비수는 맥적을 저미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사람을 찌르기 위해서는 위치를 살펴야 했고, 미진을 찌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었다. 통증 때문에 다시 발작한다면, 찰작이 이 작은 비수 하나로 그의 뱀 비늘을 처리하기는 어려울 터였으니.

“태자.”
찰작은 성격 좋게 말했다.
“크게 잘라 드시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작게 잘라 드시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서도순이 뒤에서 급히 말을 얹었다.

“어찌 태자께 그것을 여쭐 수 있느냐? 네가 알아서 분별해야지.”

 

“네가 보기에,”

미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내가 큰 것을 좋아할 것 같으냐, 작은 것을 좋아할 것 같으냐.”

 

“제가 보기에,”

찰작은 태자를 바라보았다. 촛불이 어스름한 어두운 방 안에서도, 두 눈에 안개가 어렴풋한 듯하였다.

“당신은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눈썰미는 이렇게 좋은데,”

미진은 몸을 조금 기울여 찰작의 손목을 잡은 뒤, 비수가 자신을 향하도록 하였다.

“눈치는 언제쯤 따라오는 것이냐?”

 

좋은 위치였다. 찰작이 조금만 힘을 주면, 비수가 미진의 목을 찌를 수 있었다. 찰작은 미진이 그를 끌어들이는 한편으로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가 태자를 모시는 것에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까?”

찰작은 마음을 기울이는 투로 말했다.

“태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 한 곳이 있다면, 부디 태자께서는 제게 다시 가르침을 내려 주시지요.”

 

미진은 찰작이 자신을 신경쓰고 있음을 느꼈다. 비수가 그의 목젖까지 밀려와 있었다. 찰작의 눈동자가 아래를 향했다. 그림자 속, 조금 곤혹스러워 보이는 얼굴의 찰작이 미진의 대답을 기다리듯 그를 바라보았다.

 

미인은 대개 생김새가 아름다운 자와 분위기가 아름다운 자의 두 종류로 나뉜다. 그러나 진정 미인이라 불릴 수 있으려면 두 가지를 모두 겸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을 터였다. 찰작이 아무렇게나 구는 것은 자신의 힘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스스로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이렇게 제멋대로 굴며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귀찮아할 수 있었다.

 

서도순의 시선이 미진을 향했다. 그는 미진의 짐작하기 어려운 낯빛을 보더니, 다시 찰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찰작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맥적을 전담하는 시인이 아직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자, 그를 부르는 것은……”

 

“마음 놓아라.”

미진은 스스로도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는 찰작을 세게 붙잡은 채, 비수를 맥적 반 마리 속에 꽂아 넣었다.

“그는 누구보다 칼을 잘 다루니 굳이 남이 가르칠 필요 없다.”

 

찰작은 그에게 손목이 저리도록 붙잡혔다. 그러나 미진은 끝내 손을 놓지 않고, 찰작을 끌어와 친히 맥적을 저며 발라냈다.

 

이 맥적은 껍질이 바삭하고 고기는 부드러워 아주 적절하게 익어 있었으며, 안으로 가져왔을 때에도 여전히 따뜻하였다. 찰작은 이 양과 원한이 없었으나, 미진은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한 듯했다. 태자는 맥적의 뼈와 살을 깔끔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발라냈다. 아직까지 붙잡혀 있지 않았더라면, 찰작도 그가 분풀이를 하고 있음을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진이 느닷없이 말했다.

“새 요패를 받았느냐.”

 

“응——”

찰작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힘 쓰는 일을 죄다 그에게 넘겨버렸다.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여기 와서 당신 시중을 들겠습니까.”

 

“방금 전까지는 ‘저’라고 하지 않았느냐?”*

미진은 다소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아, 어젯밤 일이 생각나는군.”

*원문은 '刚刚不是还叫‘您’吗?'로, 찰작이 좀전까지 미진을 您(그대, 당신)이라며 높여 부르던 것을 你(너)로 낮춰 부른 것을 지적했다.

 

“아직도 어젯밤 일을 기억하십니까.”

찰작은 그 김에 덧붙이듯 물었다.

“그럼 내 어젯밤 당신을 지킨 것이 충분히 담대하였는지요?”

 

“이미 승진까지 했거늘,”

미진은 뼈를 쟁반 위로 던졌다.

“또 물을 필요가 있느냐?”

 

“분명히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 말이지요.”

찰작은 여전히 아쉬운 듯했다.

“낮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분명히 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냐, 혹은 본디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냐.”

 

“이미 내게 새 요패를 주지 않으셨습니까.”

찰작은 그가 이끄는 대로 고깃점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이제 와서 ‘본디 어떠하였는지’를 묻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는지요?”

 

“세상만사는 단정할 수 없다.”

미진이 고기 부스러기를 긁어냈다.

“화살이 시위에 오른 때에도 마음을 바꾸는 자가 있으니.”

 

이는 어젯밤 찰작이 그를 죽이려 들어와서는 마음을 바꾼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화살이 시위에 올랐다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찰작은 몹시 놀란 듯했다.

“애초부터 허투루 걸어 둔 것이 아닌지요.”

 

“네가 칼뿐만 아니라,”

미진은 단어 하나하나 힘을 주어 말했다.

“활도 쏠 줄 아는 줄은 몰랐구나.”

 

“알아보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어요. 사람 이마에도 뱀이니 벌레니 하는 글자가 적혀 있지는 않잖습니까.”

찰작의 손에는 여전히 비수가 쥐여 있었다.

“무릇 모든 일에는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지요.”

 

“어떻게 해야 서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마침내 미진이 반 마리 맥적을 다 정리하였다.

“배를 가르는 것이냐? 아니면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낼 것이냐?”

 

“태자.”

찰작은 고개를 기울였다.

“어찌 이리 잔인한 말씀을 하십니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지, 짐승이 서로 물어뜯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배를 가른다느니 하는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무섭군요.”

 

미진은 찰작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어젯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객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배를 짓이겼는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손까지 떠는 것이냐.”

미진은 비수를 빼앗아 접시 위에 던졌다.

“나는 그저 예를 든 것뿐이다.”

 

“손이 떨리는 것인지 저린 것인지는,”

찰작의 두 손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미진은 서도순에게서 수건을 빼앗아 찰작의 손 위에 덮었다. 그는 그렇게 두 손 가득 기름기를 묻힌 채, 낮에 아야의 머리를 보갑에 담았을 때처럼 찰작을 바라보았다. 기실 그 눈빛에는 극도의 자기혐오를 광기 어리게 부추기는 감정이 노골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찰작이 자신을 죽여 주기를 바라는지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이든, 조금 뒤이든, 언제가 되든 상관없었다.

 

안타깝게도 오늘 밤 찰작은 영업을 접었다. 그는 미진을 보고 다시금 접시 위의 비수를 바라보더니, 홀로 손을 닦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서도순은 찰작의 속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반쯤 숙인 채 조심스레 두 사람 사이로 다가와, 나지막히 태자를 불렀다.

“태자, 손 씻을 물을 올리겠습니다.”

 

“이곳에 두어라.”

미진이 말했다.

“그리고 너와 나머지 사람 모두 물러가거라.”

 

서도순은 속으로 망설이며 떠보듯 말했다.

“그럼 이분께서……”

 

미진이 차갑게 대답했다.

“찰삼청이다.”

 

“……그럼 찰 대장께서 태자의 식사를 시중들게끔 하겠습니다.”

서도순이 물러서며 덧붙였다.

“소인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시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서도순을 따라 궁실 밖으로 물러났다. 궤안에서 먼 곳에는 은 머리에 곰 몸을 한 청동등 하나가, 가까운 곳에는 작고 정교한 삼족 연등 하나가 놓여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실내의 빛은 여전히 모자라 보였다.

 

찰작은 손을 깨끗이 닦을 수 없어, 서도순이 두고 간 양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신은 당신 것을 드십시오. 나는 이것을 쓸 테니. 이걸로 됐지요?”

 

아직도 미진과 의논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속 편한 일인가.

 

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찰작은 수건을 집어 미진의 손에 놓고, 좋은 말로 타일렀다.

“토하고 싶으면 지금 해도 좋습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은 없잖아요.”

 

미진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가 방금 삼킨 생선에서는 줄곧 비린내가 기어 올라왔다. 기실 그 역시 그가 입 안을 깨물어 나는 것도, 생선이 본디 비린내를 지녀 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구역감은 오늘, 아니 사흘 전, 그가 아야의 머리를 받든 뒤부터 사라지지 않았다.

 

석반이 시작되기 전, 미진은 다시 한 번 제 몸을 닦아냈다. 손 때문이었다. 이 두 손으로 그의 아버지, 형제, 그리고 스승의 머리를 깨끗이 처리해 보갑에 넣어 두었다. 보갑은 지금 그의 다리 옆에 놓여 있었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그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도순, 이 짐승 같은 놈.

 

그들은 이곳에 와서 단 한순간도 미진을 존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감히 지금에 와 그에게 음식을 먹으라 하다니. 그는 지금의 미진이 무엇을 입에 넣든 게워내고 싶어할 뿐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미진은 이를 악물고,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참았다. 그리고 잠시 뒤, 접시 위의 고기를 움켜쥐어 입안에 밀어 넣었다.

 

비수와 뼈가 좌상으로 굴러떨어졌다. 찰작은 손을 씻는 것도 잊고 미진의 곁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눈동자 속에 미진의 모습이 담겼다. 찰작이 가벼운 어조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재미있네요.”

 

찰작은 미진의 귓가에 입을 대고 이름을 불렀다.

“미, 무, 사*.”

*작가 주: 삼청만 야(yé)를 사(xié)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야(yé)라고 부른다. / 耶(yé)와 邪(xié)의 모양이 닮아 생긴 말장난으로, 无邪는 '사심이 없다, 악한 마음이 없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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