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이 명중했다. 그 순간, 상대의 머리가 살짝 기울더니 모든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찰작은 그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를 들었으나, 계속 살필 시간이 없었다. 주위는 온통 발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자객의 수는 많지 않을 터였다. 찰작은 그 대머리의 행동에 제약이 있어 상대의 대오 안에 많은 사람을 심어 넣을 여유는 없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러니 이렇게 우회적인 방법을 골라 복성(福成) 위병과 동궁 위랑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려 하는 것일 테다. 지금 바깥에 남아 있는 자들을 제외하면, 실내에 있는 자객은 많아야 열 명 남짓일 것이다.
열 명 남짓이라는 숫자는 찰작이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몸 위에 있는 이 자는 참으로 눈치가 없어,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방해만 하려 들었다. 방금 전까지 치솟았던 감정이 가라앉아 지금은 불쾌한 기분만이 남아 있었다.
“태자.”
찰작은 발끝으로 자신의 환수단도를 걸어 올리며, 입으로는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잠결에 정신이 흐린 모양이십니다만, 나를 붙잡고 뭘 하시려는 겁니까? 나는 자객이 아닙니다!”
단도가 손안에 떨어졌다. 그는 재빨리 움직여 칼집에서 단도를 빼내자마자 미진을 베었다!
미진은 한 손을 들어 팔뚝으로 찰작을 막았다. 육중한 힘에 하마터면 찰작의 단도가 손에서 빠질 뻔했다. 찰작의 몸은 여전히 그의 한쪽 팔에 힘을 빌려 매달려 있었다. 미진이 힘껏 몸을 들어 올리자, 찰작도 함께 딸려 올라갔다.
어두운 실내에서 두 사람이 비틀거리고, 검광이 어지럽게 반짝였다. 찰작은 자객을 경계하는 한편으로 미진도 신경 써야 했다. 떨어뜨려놓고 싶었으나 미진이 옷깃을 붙잡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손목을 거꾸로 움켜쥐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나 조금도 느슨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진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굉장히 큰 키를 보건대, 아마도 순수한 종고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또다시 찰작을 들어 올려 옆으로 밀어붙였다.
때마침 자객이 달려들었다. 찰작은 손에 힘을 살짝 풀고, 두 손가락을 칼자루 끝의 쇠고리에 걸어 단도를 역수(逆手)로 바꾸었다.
캉!
찰작은 습격을 막아냈으나, 두 발이 허공에 떠 있어 힘을 쓸 수 없었다. 귓가에 칼바람이 쌩쌩 스쳤다.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예 미진을 밟고, 반쯤 웅크린 자세로 상반신을 비틀었다.
쿵!
단도가 자객을 뒤집어 넘어뜨렸다. 찰작은 얼굴에 묻은 피도 마저 닦지 못 한 채 다시금 끌려나갔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어지러웠던 탓에 옆의 작은 탁자와 병풍을 들이받아 넘어뜨리기도 하였다. 실내의 빛이 어스름하여 서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 자의 거동이 굉장히 이상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꼭 목숨을 구할 지푸라기라도 되는 듯 찰작을 끌고 갔다.
“……너는 나를 지키러 온 것이 아니냐?”
미진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목구멍 사이로 소리를 짜내듯 말했다.
“칼로 나를 베는 것이 어찌 지켜주는 것이야?”
뒤섞인 사람들의 소리가 먼 듯 가까운 듯 들려왔다. 찰작은 그의 손을 베며 말했다.
“이렇게 나를 끌고 다니시면, 내게 하늘을 뒤엎을 재주가 있어도 펼칠 수가 없습니다!”
미진이 그를 홱 밀쳐냈다. 양쪽에 있는 자객들의 예리한 칼날이 그들 사이로 내리쳐졌다. 찰작이 걷어찬 바닥의 작은 탁자가 뒤집혀지며 왼쪽의 자객을 맞혔다. 그는 그 틈을 타 칼을 휘둘러 자객의 얼굴을 베었다.
자객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 손에 들려 있던 칼이 쾅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찰작은 단도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며 팔 하나만큼 떨어진 곳에서 변명을 덧붙였다.
“이런 것을 베는 것이라 부릅니다.”
두 사람은 이미 비교적 좁은 통로로 물러난 뒤였다. 이번에는 앞뒤 출구가 모두 막혀 있던 탓에 미진이 사람을 붙잡을 필요도 없었다. 자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자, 찰작은 도리어 앞으로 맞서 나갔다. 첫 번째로 휘두른 칼은 매우 교묘해, 손을 뻗자마자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그의 칼은 겉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칼몸 위에 새의 깃털 같은 단조 무늬가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칼은 자객의 복부를 찔렀다. 찰작은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찌른 칼을 다시 뽑아낸 뒤 연달아 세 번을 더 찔렀다. 치솟은 피가 칼자루를 적셔 손 전체가 미끄러워졌다. 찰작은 단도를 빼낸 뒤, 자객을 걷어차 내던졌다.
찰작은 살과 뼈, 오장육부 따위의 사람 육신의 모든 부위를 제 손 보듯 훤히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 단칼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지도, 어떻게 해야 능지처참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자객이든 살수(殺手)든 찰작의 눈에는 죽이기 쉬운 자와 죽이기 어려운 자,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했다.
전자는 낯선 사람이었다. 임무가 충돌하지 않을 때라면 찰작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후자는 동료였다. 그들은 매우 까다로웠다. 죽여야 할 사람이 있다면 죽여서는 안 될 사람도 있었기에, 각각의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했다.
세 번째 칼은 자객의 목을 그었다. 손이 미끄러워 그다지 아름답지 못 한 손길이었다. 그 덕에 자객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크게 벌어진 입 안으로 헉 하며 들이키는 숨소리가 가득찼다. 그는 튀어나온 두 눈으로 찰작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웃음기 없이 피를 뒤집어 쓴 얼굴이었다. 다만 두 눈이 다소 흐릿했는데, 그 표정은 무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연민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남은 자객들이 모두 찰작을 공격하러 왔다. 찰작의 반신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드러난 얼굴과 손, 목덜미에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다시금 칼을 내지르려는 순간——
몸이 들어 올려졌다!
미진은 찰작을 끌어안은 채, 몸을 틀어 밀폐된 나무창을 부수고 나갔다. 곧장 비가 쏟아져 들어왔다. 두 사람은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풀잎이 뺨을 때렸다. 미진은 찰작이 토할 지경으로 팔을 조여왔다. 태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죽여!”
그런 헛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찰작은 그의 얼굴을 밀쳐내며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좀 꺼지세요!”
미진의 목덜미 안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자세를 유지한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찰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건드릴 것이면 손을 깨끗이 씻고 만져라.”
“피가 무서우십니까?”
찰작의 손이 일순 멈칫했다. 그는 태자를 밀어내던 손길을 톡톡 두드리는 모양새로 바꾸며 말을 이었다.
“얼굴을 좀 보십시오. 나보다 깨끗하면 얼마나 더 깨끗하다고 그러십니까.”
미진의 얼굴에도 굳어버린 피가 묻어 있었다. 태자의 의복은 지저분해 관 말고는 볼 만한 것이 없었고, 온몸은 찰작보다 크게 나을 구석이 없었다. 그는 역시나 순수한 종고 사람이 아니었다. 체격만 보아도 크게 달랐다. 그는 찰작이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내버려 두지 않았지만, 음침하고 사나운 눈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찰작은 태자의 뺨을 두드렸다. 손에 들러붙은 끈적한 선혈은 빗물에 씻겨, 미진의 얼굴 위에서 응고한 핏자국과 뒤섞인 채 한 줄기로 엉켰다. 미진이 얼굴을 살짝 젖히자, 비리고 고약한 핏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려 비와 섞인 채로 찰작의 얼굴 위에 뚝뚝 떨어졌다.
“나는 피가 무섭다.”
미진이 말했다.
“보이지 않느냐?”
“보입니다.”
찰작의 얼굴도 빗물에 젖어 한 떨기 꽃이 피어 있었다.
“당신은 병도 있군요.”
“그리 눈썰미가 좋다면,”
미진은 자신을 두드리던 그의 손을 끌어와 다른 쪽 뺨에 가져다 대었다.
“이쪽도 깨끗이 닦거라.”
찰작은 굳이 그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손을 빼내려 해도 미진이 꾹 눌러 잡은 채 놓지를 않았다.
이곳은 궁실 옆의 화단으로, 정전설(庭前雪)이 제법 많이 심어져 있었다. 허나 지금은 꽃이 필 시기가 아니었던지라, 눈처럼 흰 꽃은 여위고 푸른 잎만 무성하여 손바닥만 한 이파리가 죄 흔들리고만 있었다. 찰작은 밤새 비를 맞아 춥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이 재수 없는 임무는 여전히 끝이 나지 않았다.
“좋습니다.”
찰작은 들어올린 다리로 미진을 휘감은 채, 그를 덮치듯 상반신을 기울였다. 그리곤 그의 얼굴 정면을 겨누어 뺨을 내리쳤다.
“제가 닦아드리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손에 닿는 감촉이 어딘가 기이했다.
하늘이 잿빛이었다. 미진은 피하지 않고 줄곧 찰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 피가 씻겨나간 목덜미 위로 뱀의 비늘과 흡사한 무늬가 천천히 피어 올랐다. 미진은 가까이 다가와 뒤쪽의 자객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찰작을 비웃으며 말했다.
“방금 네가 지켜낸 것이 바로 이런 물건이다!”
뱀의 비늘과도 같은 무늬 때문인지, 본디 그칠 듯하였던 비가 도리어 거세졌다. 주위의 꽃잎과 나뭇잎은 구석에서 기어 나온 뱀이 비를 따라 찰작에게 밀려들기라도 하는 듯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 찰작은 곧바로 미 씨 가문의 휘장을 떠올렸다.
미 씨 가문의 휘장은 흑려(黑蜧)로, 전설 속에서 바람과 비를 부를 수 있다는 검은 신사(神蛇)였다. 물론 미 씨가 정말 바람과 비를 부를 수는 없었으나, 그들이 이긴 전투는 확실히 비가 오는 날인 경우가 많았다.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미리난이 봉기하기 전날 밤 한 관상가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섭 씨 훼룡의 혈맥은 이미 끊어졌으니, 천하의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면 그것은 응당 같은 '물'의 행에 속한 미 씨가 될 것이라고.
미리난이 살인을 즐겨하던 것도 어쩌면 흑려의 혈통이 작용한 탓일지도 몰랐다. 그는 발작할 때마다 몹시 포악해져, 궁중의 근신들은 “발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안색이 변하곤 했다. 또한 전해지는 소문으로는, 미리난의 요절한 두 아이 모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미진은 이 사흘 동안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위자량은 그가 연기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는 정말로 발작한 것이었다.
뱀의 비늘을 닮은 무늬에 찰작의 손끝이 닿았다. 처음에는 그저 무늬였으나, 미진이 그의 손을 붙잡아 손에 묻어 있는 피를 모조리 문지르자 무늬는 진짜 비늘로 변하였다. 찰작은 이 감촉이 싫어, 발을 들어서 미진을 걷어찼다.
미진은 찰작의 손을 붙잡은 손에 점점 더 힘을 싣고선, 그 다음에는 찰작의 손을 으스러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한 자객이 달려들어 몸을 날리며 덮쳐오던 순간, 미진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곧이어 그 사람은 낡은 헝겊 인형처럼 미진에게 붙잡힌 채 풀잎 사이로 내던져졌다!
자객의 벌어진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목젖에 가까운 부분은 변형되어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미진은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조절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는 시체를 놓아버리고도 여전히 찰작을 붙잡으려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때로는 붉고 때로는 검었다. 그는 아야가 그의 아명을 부르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가(那伽)*. 아야가 말했다. 손을 움직이거라.
*불교 신화에 나오는 생물로, 모습은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인 반인반사(半人半蛇)이거나 아예 전체가 뱀인 모습을 한 거대한 뱀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미륵보살이 성불하여 그 밑에서 용화삼회(龍華三會)를 여는 나무를 나가수(那伽樹)라고 한다. 여기서는 미진의 아명.
미진이 막 되찾은 정신이 다시금 아득해졌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왜 저입니까? 아야, 아버지. 왜 저여야만 하는 겁니까?
딸랑, 딸랑.
찰작이 실내에서 칼을 뽑을 때, 처마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왔었다. 그것은 궁실의 네 귀퉁이에 걸린 철마가 내는 소리였다. 하늘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계단참에서 서로 죽이고 싸우는 소리 역시 점차 희미해졌다. 미진에게 끌려가던 찰작은 그가 다시금 자신의 손을 가져다 얼굴을 닦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손에는 힘이 가득해, 꼭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완전히 닦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뜨거운 빗방울이 섞여 있었다. 찰작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물방울들은 그의 손끝을 적시고, 다시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여태껏 고통을 느끼지 않던 삼청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문득 이것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빗물에 깨끗이 씻긴 얼굴에는 염려하는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괴롭습니까?”
미진은 음울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찰작의 요패를 끌어당겨 보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오늘은 제가 숙위(宿衛)* 교대로 들어온 첫날입니다.”
찰작은 남은 한 손으로 요패를 다시 끌어오며 말을 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대역무도한 일을 마주치다니, 참으로 공교롭군요.”
*궁궐을 호위하기 위한 숙직.
미진은 희미하게 비웃더니, 찰작이 요패를 끌어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두 사람은 온 몸이 더러워진 채, 한 명은 높이, 또 한 명은 낮게 이곳에서 우뚝 서 있었다. 찰작은 그의 속셈을 가늠할 수 없어 입을 열었다.
“태자, 당신의 동궁당장께서——”
미진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 찰작을 누른 탓에, 그는 연달아 뒷걸음질을 쳤다. 이는 살인보다도 더 어려웠다. 먼저 찰작은 그를 밀어내 보았다. 소용이 없자 이번에는 다시 어깨로 그를 받쳤다. 그러나 미진은 여전히 묵직했고, 찰작의 몸 절반이 넘도록 뒤덮고선 길까지 막아버렸다.
“위지량을 찾아가 공을 청해라.”
미진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기운 없이 눈꺼풀을 축 늘어뜨린 채, 찰작이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단정하고 말했다.
“네가 이토록 정성스레 나를 지켜냈으니, 그는 분명 네게 크게 감사할 것이다.”
'无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6장 조서(詔書) (0) | 2026.06.08 |
|---|---|
| 제5장 무야(無耶); 아비 없는 짐승 (0) | 2026.06.08 |
| 제3장 태자 (0) | 2026.06.06 |
| 제2장 도원 (1) | 2026.06.06 |
| 제1장 삼청 (0) | 2026.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