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조서(詔書)
2026. 6. 8.

미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이런 차림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 조서(詔書)*를 마주하고 엎드려 명을 기다렸다.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황제께서 조하시노라.”

금명석은 입이 바싹 말라붙은 채, 자신의 목소리가 이 거대한 궁실 속에 울려 퍼지는 것을 귀에 담았다.

“미라는 군부(君父)*를 거스르고 인륜을 저버렸으며, 삼부의 역적을 거느리고 북지에 패거하였음에도 이십 년 동안 뉘우침이 없었다. 전하를 섬길 적에는 성상의 총애가 두터워 무릇 구하는 바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미라는 성정이 포악하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평하였다. 나라의 정사를 맡은 뒤에는 거짓으로 윗사람을 받들었고, 황제의 병장을 거느리면서도 소인을 가까이하고 믿었으니, 나라에 충성하지 않고 성은을 저버린 것이다. 이제 역적은 분열되었다. 뭇사람이 바라는 바에 따라 그 아들 미진이 마음을 다해 교화에 귀의하였으니, 특별히 자를 ‘무야’라 내려 첫 공을 드러내노라. 바라건대 법도를 삼가 지키고, 속히 도성으로 돌아와 짐을 모시며 교화를 기다리라. 이에 조서를 내려 널리 알게 하노라.”

*국왕과 친부.

 

낭독이 끝났을 때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금명석은 엄숙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깐 채 두 손으로 조서를 받들고선, 몸을 굽힌 채로 기다렸다. 하늘에 천천히 해가 올랐다. 궁궐의 겹처마 사이에서는 외로운 까마귀가 맥없이 울었다. 철마가 딸랑거렸다.

 

햇빛은 점차 미진에게까지 드리워졌다. 짙은 흑색의 도포 자락이 뒤로 길게 끌렸다. 그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적 명왕의 아들, 아우성의 죄태자 미진이 삼가 칙유를 들었나이다.”

 

용산은 땅에 엎드린 채 미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입술이 떨리고 목구멍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자……”

 

“성은을 입고 하늘의 총애를 융숭히 받았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미진은 머리를 조아리고, 일어섰다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죄신은 성상의 뜻을 받들어 오늘 이후로는 미무야라 부르겠나이다.”

 

땅 위의 빗물이 아직 마르지 않아, 그가 마지막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난 뒤에는 소매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무리 무모한 금명석이라 한들, 이런 순간에까지 감히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 그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하고 있었을 때, 곁에 있던 위지량이 입을 열었다.

“칙유에는 태자의 작호를 고친다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여두반낭이 아직 남아 있으니, 태자는 여전히 아우성의 태자이십니다. 지존께서 친히 붓을 들어 태자의 ‘첫 공’이라 이르셨으니, 우리 같은 하신들이 감히 ‘죄태자’라 칭할 수는 없습니다. 태자께서는 어서 일어나시지요!”

 

금명석도 곧바로 따라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금 장군.”

서도순이 눈치를 살피며 칙유를 가져가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하는 말은 그만하시고, 어서 태자를 부축해 일으키십시오.”

 

그 말에 금명석이 서둘러 손을 내밀었으나, 미진은 이미 일어난 뒤였다.

 

궁실 안팎의 사람들은 저마다 할 일이 있었다. 가장 극진한 서도순이 미진의 뒤를 따르며 살뜰이 보살펴 주었다.

“전날 많은 일이 있어 아침에 미처 여쭙지도 못했습니다. 태자께서는 조반을 드셨는지요? 궁 안의 사람이 부족하다면, 소인에게도 쓸 만한 자가 몇 있습니다……”

 

“보았는가.”

위지량이 옆에서 말했다.

“사람을 모시는 일로 말하자면, 저자가 바로 그중 으뜸이지.”

 

“환관이란 윗사람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몸을 일으킨 금명석이 소매를 털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군. 너희는 지존께서 그의 여두반낭을 거두지 않으신 것을 보고, 양다리를 걸치려는 것이군.”

 

위지량도 일어섰다. 그는 제 민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되려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말이네. 내가 그대 같은 출신이었으면, 어찌 이 늙은 낯짝을 들이밀고 힘 겨루기나 하겠는가? 그대야말로 복 가운데 있으면서 그것이 복인 줄 모르는 게지.”

 

그가 말한 “복”은 중의적인 의미를 품고 있었다. 금명석에게 말재주는 없었으나, 그 역시 들으면 알아들을 줄은 알았다.

 

복성왕은 미리난의 양자 중 하나로, 미라 이후 미리난의 저군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당초 미라가 반란을 일으켜 달아나며 사진구주 중 1진과 2주가 떨어져 나가고 서쪽의 전사(戰事)가 긴박해졌을 때, 미라의 대장군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바로 복성왕이었다.

 

복성왕의 본명은 육관걸로, 미라보다 다섯 살 많았으며 4진의 본부 출신이었다. 미라가 달아난 뒤, 미리난이 그에게 미 씨 성을 내려주어 그는 미관걸이 되었다. 그러나 채 이 년도 지나지 않아 미리난은 다시 변심하여 그를 육관걸이라 부르게 하였다.

 

고작 한 글자였으나, 그 뜻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육관걸이 저군이 될 가능성이 가장 없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동원 수백 년 동안 성을 내려주었다가 다시 돌려 놓은 전례가 또 있었던가. 아랫사람들은 풍향을 살피며 처신했고, 더는 그를 미관걸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는 불평하지 않고 여전히 전사에 전념했다. 훗날 미리난은 미안함을 느낀 것인지 그를 복성왕에 봉하였다.

 

종고가 개국한 지 이십칠 년, 미라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왕은 오직 복성왕 한 사람뿐이었다. 미라는 1진과 2주 및 향령원을 점거한 이후, 스스로를 명왕이라 칭했고, 그가 다스리는 강역(疆域)*은 한 나라와 다름없었다.

*국경 안. 또는 영토의 구역. 

 

미 씨의 전통에 따르면, 오직 여두반낭을 지닌 자만이 저군이 될 수 있었다. 미리난은 태자 인장과 여두반낭을 모두 미라에게 주었고, 미라는 그것들을 들고 부친 곁을 떠났다. 그리고 아우성에서 그 모든 것을 미진에게 주었다.

 

“충고하지. 온종일 이런 데 마음을 쏟지 마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이들을 나 역시 많이 보았지만, 끝이 좋았던 자는 몇 없었다.”

마침내 금명석이 제법 총명한 말을 꺼냈다.

“천심을 짐작하는 일은 너희나 해라. 나는 어울리지 않겠다!”

 

그는 막 떠나려 발을 내딛자마자, 재차 고개를 돌려 위지량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너희가 나를 어떻게 농락하든, 나는 빌어먹을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이런 일로 다시금 감히 내 주공을 끌어들여 말을 지어내려 한다면, 나는 너희를 물어 죽일 것이다.”

 

국본(国本)*과 관련된 일이었으니, 금명석도 뒤늦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위지량과 서도순은 칙유의 내용을 내내 감추고 얼버무렸다. 다시 말하자면, 미리난의 속뜻을 헤아리기가 너무도 어려웠다는 의미였다!

*태자를 칭하는 다른 이름. 

 

미진을 죽일 것이라면, 어찌 아우성에서 바로 죽이지 않았는가? 미진을 죽이지 않을 것이면, 어찌 지금 당장 명확한 명을 내려주지 않는가? 무야라는 자를 내려주는 것은 커다란 치욕이건만, 또 미진의 여두반낭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태자는 태자라 할 수 없었고, 죄신이라고도 할 수 없었으니, 밑에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속에 꿍꿍이를 품고, 스스로의 짐작에만 의지해 움직이고 있었다.

 

주공께서 주군을 모시는 것은 범을 모시는 것과 같다*고 한 것도 이상한 말이 아니었다. 금명석은 등 뒤가 서늘해졌다. 이번 일로 그는 미진에게 완전히 미움을 샀다. 훗날 이것이 그의 주공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그는 미진이 두렵지 않았다. 그가 두려운 것은 미리난이었다.

*伴君如伴虎. 중국의 성어.

 

바깥의 사람들이 제 자리로 흩어지고 서도순도 물러갔다. 그러나 용산은 아직도 땅에 엎린 채였다.

 

미진은 궁실 안에 서 있었다. 햇빛이 그의 발치에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몸을 웅크려 앉아 용산에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용산은 고개를 들었으나, 여전히 울고 있었다.

 

“고작 ‘무야’라는 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우는구나.”

미진의 표정은 평온했다.

“이래서야 앞으로는 어찌하려고?”

 

“그들이 태자를 이렇게 짓밟는데,”

용산은 눈물과 콧물을 함께 흘리며 대답했다.

“그런 말을 듣고도 어찌 울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가? 무야는 무슨 무야랍니까……”

 

그가 목 놓아 흐느끼며 고개를 천천히 숙이자, 이마가 바닥에 닿았다.

“태자께서 자라시는 동안, 언제 한 번이라도 이렇게 억울한 적이 있었습니까? 형님께서 계셨을 적에는 모두가…… 모두가 태자를 나가라 불렀습니다…… 왕후께서 들으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시겠습니까……”

 

미진은 눈길을 돌렸다. 햇빛이 조금씩 그의 다리 위로 기어올랐다. 그는 한참 뒤 입을 열었다.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이 아우궁에는 왕후가 없다.”

 

철마의 딸랑거리는 소리가 그를 뒤쫓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두 팔을 펼쳤다. 햇빛이 죄 그의 팔오금 안으로 떨어졌다. 그는 웃기 시작했다.

 

“무야, 미무야라니. 천하에 이보다 내게 어울리는 자가 또 있겠느냐?”

미진은 몸을 돌려 궁실의 안쪽을 향해 말했다.

“그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리 부르기를 원하신다. 아야, 들으셨습니까. 오늘부터 나는 미무야입니다!”

 

용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무릎으로 미진의 곁까지 쫓아갔다.

“태자!”

 

“태자라, 내가 누구의 태자인가?”

미진은 고개를 숙여 용산을 내려다보며 마음껏 자신을 조롱했다.

“내 아버지의 머리가 안에 놓여 있고, 네 큰형의 머리도 그곳에 있다. 사흘이 지났다. 나는 그들을 단정히 수습해 차례로 보갑(寶箱)*에 넣어야 한다. 묻겠다. 내가 누구의 태자인가? 내가, 누구의, 태자라는, 것이냐!”

*보석으로 장식한 상자.

 

지독한 원망으로 두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분노해야 한단 말인가? 머리는 그가 벤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죄였으니, 이러한 일을 겪어 마땅하였다. 미리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짐승이었다.

 

“깨끗이 눈물을 닦고, 오늘을 반드시 기억하거라.”

미진은 용산을 발로 가볍게 밀어내고, 악몽 같은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바람이 궁실과 그의 짙은 흑색의 도포를 스쳐지나갔다. 그는 강을 건너고 연꽃을 따는 유객처럼, 겹겹이 포개지는 빛과 그림자 속에서 경쾌하고 방탕하게 외쳤다.

“여봐라, 백악(白堊)*과 보갑을 올려라!”

*석회의 별칭.

 

문이 한 번 닫혔다가 다시 열렸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진 후였다.

 

찰작은 서둘러 문을 나서는 대신, 문틀 위를 더듬어 향낭 하나를 만졌다.

 

늘 반복하는 습관이었다.

 

찰작은 문도 닫지 않고 문가에서 향낭을 열었다. 다른 쪽에서 나오던 공소견이 찰작을 보고 반가워하며 인사했다.

“찰 형제, 우리가 함께 번을 서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군.”

찰작은 향낭 속 물건을 꺼내면서 무심하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밥은 먹었나? 무엇을 먹었지? 맛은 좋았는가?”

 

“와두(窩頭)*를 먹었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금위군에 들어오니 과연 다릅니다. 하루에 두 끼를 먹을 수 있고, 밀가루까지 있습니다.”

공소견은 감히 찰작을 제대로 쳐다보려 하지 못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밀가루가 아닌 옥수수 가루나 수수 가루로 반죽해 만드는 원추형의 만터우. 워터우라고 부른다.

 

전날은 비가 많이 오고 밤이 어두워, 위지량조차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역시 오늘 아침 찰작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곧이어 마음을 반쯤 놓을 수 있었다. 자객이나 세작(作)*이라면 이런 사람을 고르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이런 얼굴을 고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

 

찰작은 향낭에서 종고관전(終古官錢)을 하나 꺼냈다. 공소견은 그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

“무엇을 사려는 것입니까? 이 성 안에서 우리에게 물건을 팔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나는 가난해서,”

찰작은 이 ‘천수오수(五銖)*’를 집어 눈앞에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 돈은 함부로 쓰지 않아.”

*중국의 고대 화폐.

 

이러한 종류의 천수오수는 종고의 관주(官鑄)* 동전이었다. 그러나 전란과 할거(割據)**, 그리고 구리의 질과 목형 문제 따위를 이유로, 오직 옛 도읍인 삼라에서만 유통되었다. 향낭 속에 천수오수가 들어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뜻을 가리켰다. 즉, 찰작에게 삼라로 가라 명하고 있는 것이다.

*관부가 주조한 것.

**땅을 나누어 차지하여 세력을 형성함. 

 

찰작이 이곳에 온 목적은 미진을 죽이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성공했어야 했다. 그러나 궁실에 들어가자, 자객들 사이에 그의 동료가 섞여 들어 있었기에 임시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 임무에는 그 외의 인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사정이 변했다는 뜻이었다.

 

위지량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금명석의 대오에 심어둔 자객들 사이에 대단한 인물이 몇 명 섞여 들어왔다는 것을.

 

찰작은 단번에 그들을 알아보았다. 그는 동료들과 같은 규칙으로 훈련받았기 때문에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만큼 명민한지에 대해서는 찰작도 알 방법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모든 동료들은 서로 마주쳤을 경우 반드시 한쪽이 죽어야 했다.

 

오래 전, 찰작은 같은 편끼리 서로를 죽이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바람대로 흐르지 않았고, 그들은 늘 찰작에게 칼을 꽂았다. 그 시절의 찰작은 허리를 감싸고 또 감쌌다. 그러나 피는 계속 흘렀다. 그는 거리와 골목을 도망쳐 다니며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느낄 적마다 칼자국의 수를 세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세었음에도 그 하나하나가 모두 동료의 짓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찰작은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죽은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상처가 나은 뒤, 그는 한동안 바깥을 떠돌았다. 찰작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이 향낭이였다. 그는 본디 갈 곳도 없었다. 그해, 살아서는 이곳의 사람으로, 죽어서도 마땅히 이곳의 귀신이 되리라고 다짐하였다.

 

상념에서 돌아오자, 찰작은 다시금 이 향낭이 싫어져 그것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곁에 있던 공소견은 크게 놀라 말했다.

“그걸 어찌 그냥 버리십니까!”

 

“내 것이 아니다. 땅에서 주운 것이지.”

찰작은 아무 데나 가리키며 덧붙였다.

“마음에 들면 가져다 팔도록 해.”

 

찰작은 말을 마친 뒤 단도를 허리에 차고 번을 서러 갔다. 그가 궁에 도착했을 때, 서도순은 미진에게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진은 또 옷을 갈아입었는데, 색은 낮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자의 칠면빙궤(漆面憑几)* 옆에는 보갑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보갑을 훑어 본 찰작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흥미로운 기분으로 숙위의 그림자 뒤에 선 채 미진을 관찰했다.
*겉에 옻칠을 한 목재 팔걸이.

닭도 먹지 않고 생선도 먹지 않는다니. 아, 그는 고기의 비린내를 묻히고 싶지 않은 것이로구나. 아버지의 머리 때문인가?

서도순은 작은 상 옆에 무릎을 꿇고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소인은 태자께서 요 며칠 입맛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특별히 사람을 시켜 금옥미죽(金玉米粥)*을 준비하라 일렀습니다. 고기 반찬은 본래 장군들께 보이기 위해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태자께서 식사를 마치시고 불쾌하지 않으시다면, 시인들께 하사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낭비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옥수수죽.

미진의 젓가락이 생선 위에 닿았다. 그는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 놓더니, 하나씩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침묵하던 서도순은 뒤로 물러나 엎드리며 말했다.

“소인의 입이 천했습니다. 태자께서는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미진의 혀끝에 비린맛이 가득찼다. 어딘가를 깨문 것인지, 생선의 맛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는 서도순을 흘끗 보았으나, 무언가 입을 열어 말하는 대신 그저 생선을 가시째 씹어 삼켜 버리기만 하였다.

 

진심으로 웃는 일이 드문 찰작이 웃었다. 미진의 모습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때, 등과 촛불에 둘러싸인 미진이 시선을 돌렸다.

 

미진은 찰작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었다. 오래도록 관찰당한 사람이 꼭 찰작 자신이라도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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