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가 죽었다.
온 세상에 큰비가 쏟아졌다. 노기인(路岐人)*은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 한 채 목하금(木荷琴)을 뜯고 있었다. 거문고에서는 쉬어버린 듯 탁한 소리가 울렸고, 빗줄기에 맞아 그의 노랫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유랑 예인.
“미도(彌屠)*는 무도하고 성정이 잔악하여…… 병사와 백성 수십만을 죽였으니, 노한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없네…… 그리하여 미씨 백여 명…… 이로부터 마음을 잃고 서로를 해하니……”
*황제 미리난(彌離難)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미(彌) 씨의 도륙왕이라는 멸칭.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찰작은 노랫소리를 들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을 바라본 채, 빗줄기가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것도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었다. 걸치고 있던 덧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태자 미진은 금관을 훔치고, 그 성 아래에서 부왕을 죽였네…… 피 묻은 꽃이 열 장 땅에 흩뿌려지니…… 붉은 비가 삼경(三更)* 하늘에 쏟아지는구나……”
*한밤중.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를 가리킨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끝없이 쏟아졌다. 늦은 가을에 가까운 시기였기에 밤은 쓸쓸하고 차디찼다. 누군가가 목이 상하도록 노래하던 노기인의 팔을 붙잡았다.
“또 여기서 곡을 하는구나.”
대머리 한 무리가 노기인을 둘러쌌다. 그들은 그의 목하금을 빼앗고선, 더러운 말을 입 밖에 내뱉었다.
“노래는 개뿔, 네 썩은 좆대가리라도 불러주마! 이 가사는 며칠 전부터 금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감히 모르는 척하는 것이냐?”
노기인은 그들에게 떠밀리다 진흙탕에 넘어졌다. 그는 옆으로 침을 탁 뱉더니 여전한 기세로 말했다.
“좋아, 어떻게 금할 게냐? 기껏해야 사람 목을 베는 것 아니겠어. 이 몇 년 동안 너희가 벤 머리로는 아직도 모자라느냐? 하지만 어쩌겠나, 이 노래는 끝내 다 부를 수 없는 것을!”
“체면을 세워 주어도 받을 줄 모르는 놈이 또 있군.”
대머리의 우두머리가 노기인의 주위를 몇 걸음 빙빙 돌며 말했다. 군화가 진창을 밟는 소리가 터벅터벅 울려퍼졌다. 그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
“네 머리통이 몇 푼 가치나 있다고 그러겠느냐. 베어도 던져 버릴 곳조차 없는 것을. 여봐라, 저 놈의 혀를 베어라.”
“벨 거면 베어라! 너희가 내 혀를 베어도 천하 사람들의 입을 막지는 못 할 것이야!”
노기인은 그들에게 붙잡혀 눌린 채, 양 팔을 마구 허우적대며 꿋꿋하게 외쳤다.
“미도가 낳은 아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고, 그 손자도 똑같이 짐승 같은 놈이다! 미진(彌津)이란 놈이 어떤 놈인가? 신의를 저버리고 아비와 형을 죽인——”
하늘이 어둡게 내려앉아, 폭우가 울부짖는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찰작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비의 장막 너머로, 노기인이 고통에 몸부리치는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지 마라.
빗방울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찰작은 눈 한 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과 함께 노기인을 주시할 뿐이었다.
이 사람들은 손발이 민첩했다. 대머리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자, 아래에 있던 사람이 곧바로 혀를 받쳐 올렸다. 그는 혀를 들고 빗속에서 몇 걸음을 걷더니, 사방을 향해 외쳤다.
“다들 잘 들어라! 미라가 이곳에서 무엇을 했든, 무엇을 말했든 그는 조정이 역적으로 지명한 자다! 지존(至尊)*께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은 변치 않는다. 그의 봉호화 작위는 이미 박탈되었으니, 지금에 이르러서도 역당을 숨기고 남은 무리를 비호하는 자는 모두 종범으로 논죄할 것이며, 적발되면 일가를 멸할 것이다!”
*황제의 존칭. 천자.
사방에 불을 켠 사람 하나 없는 까만 밤 속에서, 대머리의 윤곽만이 선명했다. 그는 웅장하고 건장한 사내였다. 투구는 쓰지 않았으나 명광개(明光鎧)*를 입고 있었다. 종고(終古)의 규율에 따르면 이런 갑옷은 오직 내정의 당장과 지방의 통병만이 입을 수 있었다.
*중국 고대의 갑옷 중 하나.
“이것이 무엇을 노래하는지는 내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이런 모함 가득한 가사를 쓰는 녀석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머리는 매 같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이것만 말하지. 이후로 이런 노래는 부르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도 금한다! 감히 입을 여는 자는 혀를 벨 것이고, 귀를 기울이는 자는 귀를 벨 것이다. 믿지 못 하겠다는 놈이 있다면 얼마든지 와서 시험해 봐도 좋다.”
노기인은 죽은 개처럼 빗발 밖으로 끌려 나갔다. 대머리의 군화는 멈추지 않고 찰작 근처로 다가왔다. 안에는 가죽 갑옷을 입고 겉에는 덧옷을 걸친 백 명의 부대가 빗속에서 한밤중 내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한 말은 저들에게만 들으라고 한 것이 아니다. 이곳에 왔다면 스스로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천성부(天星府)에서 모두 당부했을 것이다.”
대머리는 참을성이 좋지 않았고, 말도 길게 하지 않았다. 그는 대열 안으로 걸어 들어가 칼날 같은 시선으로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 뒤, 별 의미가 없다는 듯 한 병사에게 질문했다.
“이름이 뭐지?”
갑자기 지목된 병사는 곧바로 대답했다.
“진칠아(陳七兒)*입니다!”
*진 씨의 일곱째 아이라는 뜻의 이름.
“일곱째라. 네 부모형제는 그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느냐?”
“장군께 아룁니다.”
병사는 비를 오래 맞아 이가 부딪힐 만큼 입이 얼어 있던 탓에, 조금 더듬거리며 답했다.
“먹여 살릴 수 없었습니다. 제 위의 형 넷이 굶어 죽었습니다.”
“가엾구나. 하지만 우리 삼라귀에 왔으니, 앞으로 굶을 일은 없을 것이다.
대머리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먹어라.”
병사는 멍하니 대머리를 바라봤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 한 듯했다. 대머리는 손수건을 들어올리며 그 안에 있는 것을 가져가라는 듯 눈짓했다.
“못 알아들었느냐? 먹으라 하지 않았느냐.”
혀를 감싼 손바닥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진칠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더듬거렸다.
“자, 장군…… 안 됩니다……”
“안 된다고?”
다리에 힘이 풀린 진칠아는 대머리의 시선 아래에서 허둥대며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장군……”
대머리는 한 걸음 다가서며 그에게 반문했다.
“왜 물러서지? 이것이 내가 네게 내리는 첫 번째 군령이다. 따를 것이냐, 따르지 않을 것이냐?”
진칠아는 그 혀를 바라보았다. 그는 추워서인지 겁에 질려서인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게 저것을 먹으라 했지, 죽으라 하지 않았다. 이런 것조차 하지 못 하면서 감히 삼라귀에 들어오려 했느냐?”
대머리는 다른 한쪽 손을 들어 진칠아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세상에 이런 좋은 일이 다 있다 생각했어? 이곳이 정말 빌어먹게 자비로운 곳이라 여긴 것이냐!”
진칠아의 머리는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더 낮게 수그려졌다. 호흡이 가빠지며 몸이 떨리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 비가 후드득 쏟아졌다. 그는 더이상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 신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혀를 못 먹겠다면,”
대머리는 진칠아의 머리를 세게 짓눌렀다.
“네가 뱉어낸 것은 먹을 수 있겠지?”
진칠아는 공포 속에서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쇠 집게 같은 대머리의 손이 억세게 그를 토사물 속에 처박았다. 낮에 대충 집어 삼켜 다 소화되지 않은 콩과 건량이 전부 얼굴 위에 뒤덮였다. 신물이 치밀어 올라, 입과 코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그는 체면 따위를 살필 겨를도 없이 토하고 또 소리내어 울었다.
주위의 병사들은 모두 진흙과 나무로 빚은 인형 같았다. 돌아보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찰작은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진칠아의 흐느낌이 떠돌며 귀에 닿았을 뿐이다.
움직이지 마라.
빗방울이 턱을 따고 미끄러지듯 뚝뚝 떨어지더니 가슴팍 속으로 사라졌다. 안에 가죽 갑옷을 입고 있던 탓에 찰작의 손은 죄 얼어붙어 있었다. 천성부가 지급한 가죽 갑옷은 질이 매우 좋지 않아 종이보다 조금 두껍나 두껍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겉보기에 그럴싸한 것을 빼면, 적의 칼 하나를 막아낼 수도 없었다.
찰작과 병사들은 이 가죽 갑옷 같은 존재였다. 모두 한 번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진칠아의 울음소리는 오래 이어지지 않고 멎었다. 그는 머지 않아 끌려 나갔다. 대머리는 계속 대열 안을 순시하며 말했다.
“듣기 거북한 말을 좀 하지. 몇 해 전만 해도 너희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내 앞까지 올 일은 없었다. 다만 미라가 일을 그르쳐 멀쩡한 금위군을 두 파로 갈라놓은 탓에, 지금은 내가 일을 보려 해도 사람이 부족하니 그리 되었을 뿐이다. 들어올 때 밖에 걸린 시체들을 봤겠지. 전부 미라의 헛소리를 믿고 그를 따라 무슨 '거사'라는 것을 해내겠다고 했던 자들이다. 지금은 존귀함이나 체면은 커녕 사람 꼴도 못 하고 있지.”
여기까지 말한 대머리는 마음에도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우리 금위군은 큰 손해를 보았다. 8부 중 3부가 줄었으니, 나 역시 정말 어쩔 수 없어 각 군진부아에 사람을 요구한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너희들은 천성부에 있었다. 허나 그곳은 이곳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너희가 어떤 덕행과 재능을 지녔는지 여기에서는 상관치 않는다. 이곳에서 내가 처음 꺼낼 말은 군령은 산과 같다는 것 오직 하나뿐이다!”
그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더니 찰작을 지나치며 시선을 멈추었다.
“이름이 뭐지?”
천지는 한 덩이 먹처럼 검게 물들고, 비가 거미줄처럼 찰작을 휘감고 달라붙었다. 환수단도(環首短刀)*는 손 아래에 있었다. 마침내 움직일 수 있게 된 찰작은 창백하게 얼어붙은 얼굴을 돌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대답했다.
“찰작(刹雀)입니다.”
*끄트머리에 둥근 고리가 달린 단도.
희미한 밤빛은 사람을 또렷하게 비추지 못 했다. 그물 같은 빗줄기 아래로 찬바람이 연이어 불어와, 찰작의 미간에 맺힌 빗방울을 밀어냈다. 빗방울은 찰작의 윤곽을 미끄러지듯 비스듬히 굴러떨어지더니, 마지막에는 그의 손등 위에서 부서졌다. 그는 대략 열일곱에서 열여덟 즈음의 제법 젊은 나이로 보였지만, 눈동자 속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산 사람 같지 않았다.
“새 이름 한 자라니*, 길들이기는 좋겠군.”
대머리는 그를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
“자는 지었느냐? 변변한 것이라도 하나 말해 보거라.”
*찰작(刹雀)의 작(雀)은 참새라는 뜻이다.
“장군께 아룁니다.”
소란스러운 빗소리 속에서 찰작이 대답했다.
“초자(草字)* 삼청(三青)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자를 겸칭하는 말.
“그래.”
대머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수건 안에는 여전히 그 혀가 받쳐져 있었다.
“찰삼청, 네가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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