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줄리앙10
페이두를 유심히 살펴보던 상담사는 이 젊은 남자의 얼굴에 말문이 막힌 듯한 짜증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표정은 그를 살아 있는 젊은이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는 평소에는 볼 수 없던 페이두의 모습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의 예전 상담사는 전문 분야가 청소년 문제인 바이 선생의 제자였는데, 페이두는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그녀를 찾아 왔다. 그것보다 더 전에는 상담사가 몇 명이나 바뀌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마 페이두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듣자 하니 그는 그야말로 골칫덩어리 '문제아'였다.
제자는 환자를 바이 선생에게 소개하며 상황을 미리 일러주었다. 바이 선생이 가장 먼저 파악해 두려 했던 것은, 상담을 받는 주된 원인과 상담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 한 이유였다.
“사실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의 제자가 말했다.
“치료에도 꽤 협조적이고, 무슨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곧바로 응해요.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이나 갑작스러웠던 어머니의 사망 이야기를 꺼내도 피하지 않고, 아주 성실하게 대답하죠. 오히려 제가 말을 잇지 못 할 때면, 배려하듯 먼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까지 해 주기도 해요. 바이 선생님,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바이 선생은 곧바로 제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 환자가 본심을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상담사로 일하면서 비협조적인 환자들을 여럿 보아왔다. 심리 검사지의 답변을 대놓고 지어내는 사람도 있었고, 억지로 끌려와서는 자신에겐 문제가 없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었으며,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상담사를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상담이란 건 피상담자와 하는 일종의 머리싸움이기도 했다.
상담사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여러 이유로 끝끝내 피상담자와 신뢰 관계를 맺지 못 하기도 했고, 상담이 실패하거나 무의미하게 끝나기도 했다. 그런 환자들은 다른 상담사를 찾아가거나, 상담을 포기하고 더이상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된다.
페이두는 말할 것도 없이 특수한 사례 중에서도 가장 특수한 경우였다.
그는 검사지에 답변하던 순간부터 적당히 대답을 지어내는 타입이었지만, 그 조작이 너무나 완벽해서 허점이 없었다. 대화할 때도 말을 많이 하며 피하는 경우가 없었고, 언뜻 보기엔 ‘무슨 일이든 말할 수 있는’ 개방적인 성격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 통제력이 뛰어나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도 민감한 화제에 상담사에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감정 반응도 늘 긍정적이었다.
유일한 문제는, 너무 긍정적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건강하고 강한 사람일지라도,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겪고서 늘 이성적이고 담담할 수는 없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인공지능이라면 심리 상담 같은 건 필요도 없었겠지만.
바이 선생은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끝내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라포를 효과적으로 형성하지 못 했다. 그러니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 수준으로는 여기까지예요. 이 이상으로는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신다면, 조금 더 좋은 상담사를 소개해드릴게요.”
그러나 뜻밖에도, 페이두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오히려 한 달 넘게 효과 없는 상담을 이어가고선, ‘돈만 많은 바보’처럼 상담비를 두 배로 올린 뒤 바이 선생의 매주 수요일 밤 마지막 두 시간을 사버렸다. 그리고는 떠날 때마다 달콤한 말을 한 마디 남겼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감사합니다.”
만약 바이 선생에게 자신이 ‘엄마’가 될 법한 나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이 꽃 같은 청년이 자신을 꼬시려는 건 아닌가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이야깃거리가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페이두는 그녀에게 책을 빌려가 일주일 후에 돌려주고, 빌린 책에 관해 한바탕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상담을 하러 온다기 보다는 그녀에게 대학원 공부를 배우러 오는 것 같았다. 비록 효과는 미미했지만, 그런 방식이 때때로 그의 진짜 생각을 살짝 드러내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그는 대답을 피하고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는 문을 굳게 닫은 성에 사는 사람 같았다. 사방을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고, 투명한 창문을 딱 하나만 남겨둔 채 몰래 세상을 엿보는 것처럼 굴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을 때 비로소 그 창을 살짝 열어볼 수 있었다.
바이 선생은 조심스럽게 페이두를 살피며 물었다.
“친구인가요?”
“아뇨,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장난이에요.”
페이두는 이를 살짝 갈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저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봬요.”
바이 선생은 언제나처럼 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페이두는 한 손으로 문을 짚고, 다른 한 손은 그녀에게 내밀며 더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맞다, 바이 선생님. 아마 다음 주가 마지막이 될 거예요. 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다른 분께 시간을 내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바이 선생은 순간 멈칫하며 무심결에 물었다.
“문제는 해결된 것 같나요? 앞으로는 안 와도 될 것 같아요?”
페이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즘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새로운 생활을 시도해보고 있거든요. 그동안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이 선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여전히 당신의 ‘제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겠군요.”
“제가 알면 됐죠.”
페이두는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얘기해요.”
다음 날 아침, 옌청에서는 여전히 시민들의 불평과 함께 차량 제한 조치가 계속되고 있었다.
배달원 같은 차림에, 바짓단에는 고양이 털 몇 가닥을 붙인 사람이 덜컹거리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길을 가던 뤄원저우 옆에 고급 승용차를 모는 ‘라이벌’이 나타났다.
물론,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뻔뻔하기로 유명한 뤄 팀장은 고작 이 정도에 동요할 리가 없었다. 그는 자전거 페달을 항공모함처럼 힘차게 밟아 나가다가, ‘땅에 발을 딛어 만든 브레이크’로 길가에 딱 멈춰 서며 페이두에게 턱짓을 했다.
“브루조아, 또 와서 교통경찰 동지들한테 따뜻한 선물이라도 전해주려고? 이따 내가 VIP 전용 위반 딱지 한 묶음을 특별히 가져가라 해 주지.”
페이 총은 태연하게 반격했다.
“친구 여동생의 심문에 동행해도 교통 위만 딱지를 받나요? 뤄 팀장님, 당신네 시국은 정말 ‘무전유죄*’의 정석이네요.”
말을 마치며 시청 정문을 위아래로 훑어 본 페이두의 눈썹 끝에 “가난하군”이라는 한 마디가 걸려 있었다.
*원문은 衙门口、八字开,有理没钱莫进来로, '관청의 문은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여덟팔자로 열려 있지만, 도리에 맞는다 해도 돈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의 중국 속담이다.
뒤를 돌아본 뤄원저우의 눈에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눈가가 빨갛게 부어 있는 여자는 자세히 보니 장둥라이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뤄원저우는 자전거 ‘28형 항공모함’에서 내리며 말했다.
“장팅?”
장둥라이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장팅이었다. 뤄원저우는 그녀와 그다지 면식이 없었다. 제 오빠처럼 불법으로 카레이싱을 하다가 파출소 유치장에 들어간 적이 없는, 얌전하게 살아온 아가씨였으니까.
장팅이 대답하려는 순간,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 남자는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와 뤄원저우에게 명함을 내밀며, 장팅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형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의뢰인 장둥라이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변호사입니다. 사건 수사 상황을 조금 알고 싶습니다.”
뤄원저우는 미간을 좁히며, 변호사의 얼굴을 훑었다. 평소처럼 웃거나 길게 말하지 않는 그의 눈매에는 오만한 냉기가 어려 있었다.
뤄원저우는 명함을 받기 전에 먼저 페이두를 흘끗 쳐다봤다. 페이두는 남의 일이라는 듯 차 문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선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다. 뤄원저우는 다시 변호사를 무시하고 장팅에게 물었다.
“변호사 선임은 가족이랑 상의한 일이야? 너희 큰아빠는 알고 있고?”
장팅은 멍해졌다.
뤄원저우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변호사의 명함을 받아 들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아직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대응 한 번 빠르군.”
“이런 상황일수록 변호사가 일찍 개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변호사도 지지 않고 똑같이 억지 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
“의뢰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니까요.”
바로 그때, 뒤쪽에서 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뤄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뤄원저우가 고개를 돌리자, 샤오하이양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안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전날 타오란과 함께 시국으로 불려온 그가 오늘은 제 발로 찾아 온 것이었다.
“마침 잘 됐다.”
뤄원저우는 그를 보더니 웃으며 뒤를 가리키곤 변호사에게 말했다.
“이 사건의 ‘담당자’와 이야기 나누시는 게 좋겠어요. 샤오하이양, 이 사람들 네가 맡아.”
느닷없이 변호사를 떠안게 된 샤오하이양은 얼떨떨해졌다. 그는 변호사에게서 쏟아지는 질문에 완전히 당황해서 물었다.
“타… 타오 부팀장님은요?”
뤄원저우는 태연히 웃으며 대답했다.
“타오란은 집에 일이 있어서 오늘은 안 나온다. 샤오, 어쨌든 이 사건은 너희 분국에서 맡고 있으니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냐.”
뤄원저우는 샤오하이양과 변호사를 떼어내고 나서야 얼굴을 굳히고 페이두를 돌아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페이두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저는 그저 ‘결혼할 나이도 안 된’ 운전 기사라서요. 그냥 태워주다 보니 여기까지 같이 온 것뿐이에요.”
뤄원저우는 그를 한 번 흘겨보더니, 옆에서 갈피를 못 잡는 장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허중이의 사진을 불러왔다.
“길게 말 안 할게. 이 사람 본 적 있어?”
장팅은 갑작스럽게 들이밀어진 얼굴에 놀라 몸을 뒤로 젖히곤 본능적으로 페이두의 뒤에 숨어버렸다.
페이두가 손을 들어 뤄원저우의 손목을 막았다.
“여성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할 수는 없는 거예요?”
“장팅.”
뤄원저우는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며 조용하고도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그제 밤에 살해당했고, 지금 네 오빠가 유력한 용의자야. 이건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야. 네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결정적이라고. 그런데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 뒤에 숨어서 어쩌자는 거야?”
장팅은 몸을 떨며 페이두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괜찮아요.”
페이두는 허리를 굽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팅팅, 사실대로 말해요. 뤄 팀장님과 제 의견은 똑같거든요. 우리는 장둥라이가 이 사건에 연루됐을 리 없다고 보고 있어요.”
그의 말에서 조금 위안을 얻은 듯, 장팅은 잠시 망설이다가 뤄원저우의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긴장해서는, 엄지손톱에 흰 자국이 생길 만큼 물어뜯었다. 그녀가 겨우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진만 보고선 단정할 수 없지만…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무역센터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 내려가 밀크티를 사려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녀는 뤄원저우의 휴대폰 액정 속에 떠오른 사진을 가리켰다.
“바로 이 사람이었어요. 저를 붙잡고, ‘펑니엔거’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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