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줄리앙9

제10장 줄리앙9

 

뤄원저우가 소포를 뒤집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지만 다른 물건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한 번 진동하더니 사진이 한 장 도착했다. 외진 자갈길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물가와 수풀이 어우러진 조용하고 좁은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쓰레기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사진의 아래에는 수신인도 발신인도 없이 달랑 한 마디만 적혀 있었다. ‘겸사겸사.’

 

뤄원저우가 잠시 사진을 곰곰이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고양이 주인님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주인님의 이름은 ‘뤄이궈’로 일곱 살 된 중장년 고양이였다. 얼굴은 둥글고 눈은 크며 털은 반들반들했는데,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성격이 좀 고약하단 점이었다.

 

뤄이궈는 먼저 앞발로 뤄원저우의 다리를 톡톡 치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벽 모서리로 다가가서는 불만 가득하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집사의 눈앞에 텅 빈 밥그릇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덩치 큰 바보 집사는 한 번 흘긋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시를 당해 격분한 뤄이궈는 후다닥 달려가 뒷발로 서서 뤄원저우의 다리를 꽉 껴안고, 야옹야옹 소리 내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뤄원저우는 허리를 굽히고선 뤄이궈의 목덜미를 붙잡아 네 발이 공중에 둥둥 뜨도록 들어올렸다.

“너 이 자식, 살기 싫어졌어?”

뤄이궈는 앞발을 허공에 매단 채 ‘야옹’하며 두어 번 소리치더니, 뻔뻔스럽게 혀를 내밀며 으쓱거렸다.

 

뤄원저우가 눈을 굴리며 손을 놓자, 고양이는 날렵하게 몸을 비틀어 빙그르르 내려와 네 발로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원하는 대로 충분한 사료에 캔까지 덤으로 얻어냈다.

 

뤄이궈는 만족스러웠다. ‘예쁜 자식은 매로 키운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사는 물어뜯어야 제 말을 겨우 들어주는 것이었다.

*중국의 옛 속담으로, 자식의 훈육에 체벌을 추천한다는 뜻이다.

 

뤄원저우는 서투른 손길로 한동안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시선을 내려 뤄이궈의 꼿꼿하게 선 꼬리를 보았다. 이 주인님은 본래 아침 시장에서 장을 보던 타오란이 페이두를 위해 사 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페이두가 제법 좋아하는 듯했는데, 어쩐 일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금세 귀찮아하며 더는 기르려 하지 않았다.

 

타지가 고향이었던 타오란은, 사회 초년생 시절 집도 살 형편이 못 되어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살았다. 언제 이사할지 모르니 반려동물을 기르기 힘들었고, 결국 고양이를 뤄원저우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뤄원저우는 고양이도, 개도, 열여섯 살 이하의 아이들도 싫어했다. 머리가 복잡해 터질 것 같던 뤄원저우는, 한 달 내에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이 네 발 달린 골칫덩어리를 ‘냄비에 삶아버리겠다*’고 타오란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냄비 하나를 一锅(이궈)라고 한다. 그래서 뤄이궈骆一锅다.

 

그렇게 어느덧 칠 년이 흘렀다. 여전히 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뤄원저우는 욕지거리를 퍼붓던 육식주의자에서 성실한 집사로 전락했고, 뤄이궈는 비축 식량에서 집안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세상일이란 과연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양이를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던 뤄원저우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반쯤 먹던 빵을 꺼내 들고는 곧장 밖으로 나섰다.

 

거리의 교통 체증은 한결 풀려 있었다. 언제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움직이며 정해진 시간 외에 노동하지 않던 뤄 대장이 서둘러 시국으로 돌아갔다. 사무실에는 당직자 외에도 아직까지 눈을 비비며 모니터 기록을 뒤적이는 사람이 있었다.

 

뤄원저우가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 갔구나.”

 

타오란이 기지개를 켰다.

“가서 할 일도 없는걸. 근데 넌 어쩐 일이야?”

 

“한밤중에 외롭게 고생하는 네가 안쓰러워서 옆구리 좀 따뜻하게 데워주려고.”

뤄원저우가 느긋하게 다가가 그의 책상 위에 앉았다.

“모범 경찰관님, 뭐라도 건진 거 있어?”

 

“청광공관의 CCTV는 전부 야외에 있어. 20일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의 영상은 우리 기술팀이 이미 확인했고. 그 사이에 장둥라이가 또렷하게 찍힌 건 총 네 번이야. 외형적 특징으로 추적해 보니, CCTV에도 없고 회관 안에도 없는 시간이 전체적으로 약 40분 정도 있더라. 다만 그 ‘40분’은 합계고, 매번 빠져나간 시간은 짧았어. 그 중 고의로 CCTV를 피한 건 딱 두 번이었어. 한 번은 10시쯤. 여자와 함께 10여 분 정도 외출하면서 카메라 위치를 확인했어. 다른 한 번은 자정 무렵인데, 자정 이후에는 회관 안에 있는 카메라가 꺼져서 언제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어.”

 

뤄원저우가 턱을 문질렀다.

“10분 남짓이라고?”

타오란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그 여자를 찾으면 증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뤄원저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너무 빠른데.”

“…”

 

그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뤄원저우는 말을 돌려 성실한 얼굴로 물었다.

“허중이가 찍힌 부분은 없었어?”

 

“없어. 오늘 오후에 의심되는 장면을 스무 개쯤 추려봤는데, 얼굴이 잡힌 게 하나도 없었어. 너무 멀리서 찍힌 것들도 있었고.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지만 아닌 것 같아. 무엇보다, 범인이 정말 청광공관에서 허중이를 죽였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카메라에 잡혔을 것 같아?”

 

“출입구 몇 군데에도 찍힌 게 없다면 허중이 스스로 CCTV를 피했을 가능성도 있어.”

뤄원저우가 일어나 타오란의 등 뒤를 빙빙 돌았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면, 페이두가 일부러 이걸 가지고 오진 않았겠지.”

 

타오란이 말했다.

“하나에 4시간이 넘는 영상들을 확인해야 되는데, 그걸 페이두 혼자 다 볼 수는 없었을 거야. 아마 참고용으로 넘겨준 거겠지.”

 

뤄원저우가 고개를 젓다가 문득 뭔가 떠올린 듯 말했다.

“아까 뭐라 했지? 청광공관 CCTV는 자정이 지나면 꺼진다고?”

 

“응. 계속 켜져 있는 건 주차장 근처랑 회관 바깥쪽에 있는 좁은 길 쪽에 놓인 몇 개뿐이야.”

 

“안쪽 CCTV는 손님들이 술에 취해서 추태 부리는 모습이 찍히는 걸 막으려고 끈 거겠지. 바깥쪽은 안전 확보 차원에서 계속 켜둔 거고.”

뤄원저우가 그의 의자 등받이에 손을 짚었다.

“안쪽 카메라는 손님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 달았을 테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회관 밖은, 외부인이 침입하는 걸 막기 위해 몰래 설치했을 수도 있어… 통째로 켜 둔 기록을 불러와 봐.”

 

타오란은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을 움직여 자료를 불러냈다.

 

뤄원저우는 방금 전에 받은 사진을 휴대폰으로 열어 보았다.

“연못 옆에 있는 자갈길을 찍은 영상은 없어?”

 

타오란이 조금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나 있어.”

 

정확히 8시에 찍힌 영상 속 화면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빨리 감기로 넘겨보니, 화면 중앙을 가로막던 검은 그림자가 ‘퐁’ 튀어 오르며 시야가 트였다. 새 한 마리가 날아간 것이다.

영상의 네 모퉁이는 온통 까맣게 가려져 가운데에만 무언가가 조금씩 찍혀 있었다. 새가 드나들며 화면을 가리기도 했다. 아마 나무 위 숨겨진 집에 달린 카메라인 듯했다. 8시 50분쯤 되자, 비틀거리며 걷는 그림자가 카메라 아래에 놓인 쓰레기통 근처에 나타났다. 타오란이 곧바로 영상을 정지시켰다.

 

그 사람은 나무 위 카메라에는 눈치 채지 못 한 채 담배를 피우러 쓰레기통 쪽으로 향했다.

 

“잠깐만, 이 사람… 허중이랑 조금 닮은 것 같은데!”

타오란이 한참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꽁초가 남아 있으면 DNA 감식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오후에 비가 쏟아져서… 그러니까 이제와서…… 너 왜 웃어?”

 

뤄원저우가 주머니에서 담배꽁초가 든 증거 봉투를 꺼내 보였다.

“이걸로 확인해 봐.”

 

타오란이 아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걸… 어디서…”

“쉿, 조용히 해.”

뤄원저우가 손가락을 입가에 세우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어떤 성가신 꼬맹이가 보내준 거지.”

 

타오란은 이 말을 듣고 더 놀란 기색이었다.

“너희 둘 화해한 거야?”

 

뤄원저우는 그의 뒤통수를 잡고선 고개를 화면 쪽으로 되돌렸다.

“근처에 다른 단서는 없어?”

 

“아, 잠깐만.”

타오란은 그렇게 말하며 메모를 적어둔 지도를 꺼냈다.

“이 길은 방향이 두 군데밖에 없어. 한쪽은 청광공관으로, 한쪽은 공공 구역으로 이어져 있지. 이 사람은 공관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갔어… 나가면 큰 도로변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난 공공 구역이 더 취향이야.”

뤄원저우가 웃었다.

“언제든 조사할 수 있고, 부자들 눈치 볼 필요도 없잖아.”

 

두 사람은 곧바로 시청을 나와 버스 정류장 근처 교통경찰대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이슬이 떨어질 듯 밤이 깊어갔다. 뤄원저우는 차 안에 켜두었던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려 바람을 맞았다.

 

뤄원저우가 말했다.

“오늘 밤 알아낸 단서는 당분간 밖에 알리지 마. 팀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타오란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냥. 아마 며칠 지나면 분국이 사건 이관을 신청할 거야.”

뤄원저우가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면, 넌 다른 건에 신경 쓰지 말고 허중이 건에만 집중해. 진범을 찾아내기 전까진 장둥라이가 ‘용의자’로 며칠쯤 더 구금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걸로 그 녀석도 정신 좀 차리지 않겠어.”

 

타오란은 뤄원저우의 말 속에서 다른 때와 다른 진중함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반응에 뤄원저우가 눈꼬리를 찡긋했다.

“이런 한밤중에 단 둘이 있는데, 네가 계속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못 참고 무슨 짓을 해 버릴지도 몰라.”

 

“날 희롱하는 건 돈도 안 든다 이거지?”

타오란이 대범하게 손을 휘저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들어서는 누구랑 놀러 가지를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지난번에 같이 당구 치러 갔던 그 사람은?”

 

뤄원저우가 말했다.

“아, 유학 갔어. 이탈리아에, 중국어 배우러.”

 

타오란은 침을 잘못 삼켜 사레에 들릴 뻔하며 말했다.

“뭐야, 뭐가 이렇게 황당해?”

 

뤄원저우는 한 손은 운전대에 올려두고, 다른 한 손은 반쯤 열린 창에 걸친 채 무표정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에 '황당하지 않은 게' 뭐가 그리 많겠어. 게다가 우리 아버지는 아직 은퇴도 안 했는걸. 별 말씀은 안 하시지만 아무래도 보기에 좀 그렇잖아. 앞으로 1, 2년 정도 더 있다가 아버지 은퇴하면, 그때 가서 누구 만날지 생각해 보든지 하지, 뭐. 혼자 사는 것도 익숙하고. 아버지는 진짜 일 중독이라니까. 이해가 안 돼. 난 진작부터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타오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정도면 괜찮은 거지. 너네 집안은 그래도 생각이 열려 있잖아.”

곧장 눈치를 챈 뤄원저우가 말했다.

“너 보고 빨리 결혼하래?”

“그런 건 아닌데.”

뤄원저우가 곁눈질을 했다.

“나야 취향이 좀 특이하니 그렇다 치지만, 넌 뭐가 문젠데?”

 

타오란은 잠시 생각하더니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가난.”

뤄원저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내 월급으로는 겨우 집 대출을 갚는 거나 할 수 있다고. 가난은 엄연한 사실이지.”

타오란은 헝클어진 머리를 대수롭지 않게 쓸어 넘겼다.

“그래도 어찌어찌 모아 집은 장만했으니, 적어도 맞선에 나갈 자격은 생겼네. 인생은 뭐 이렇게 그럭저럭 흘러가는 거니까, 꼭 여신을 아내로 맞을 필요도 없고.”

 

뤄원저우가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도로 표지판을 확인하니, 곧 목적지에 도착할 듯했다. 그는 시선을 전방에 두고 담담하게 물었다.

“너한테도 여신이 있었어?”

“고등학교 때 옆반에 있던 여자애. 자오야즈*처럼 생겼었어. 연락 안 한 지도 몇 년 됐네. 아마 벌써 시집갔을 거야. 안 갔어도 내 차례는 아닐 테고. 거의 다 왔다. 당직자한테 전화 좀 할게.”

*홍콩의 배우.

 

5분 뒤, 뤄원저우가 차를 세웠다. 타오란이 내리려던 순간, 뤄원저우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하나만 묻자. 진지한 거야.”

 

타오란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뭔데?”

 

“예를 들어서, 말 그대로 예를 들어서야. 만약에 네가 여자라면, 나랑 페이두 중 누구랑 결혼하고 싶어?”

“……”

 

“만약이라니까.”

타오란은 오래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만약에 내가 여자였다면, 엄마한테 어떻게 커밍아웃할지 매일 같이 걱정하느라 너희 둘을 상대할 겨를도 없었을 거야.”

 

“커밍아웃 같은 건 할 필요 없어. 세상 여자들은 다 죽었어.”

“그럼 다른…”

 

“다른 남자도 다 죽었어.”

뤄원저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남은 건 우리 둘뿐이야.”

60억 인구가 뤄원저우의 한 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타오란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마침내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그럼 너지, 뭐.”

뤄원저우는 그 말을 듣곤 애써 참으려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닭을 훔친 도둑 같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날 고른다고? 확실한 거지?”

 

타오란은 손가락으로 꼽아 보더니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페이두는 아직 2개월 정도 모자라서 법적으로 결혼도 못 하는걸…… 너 뭐 하는 거야?”

 

뤄원저우는 커다란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등받이에 기대 웃음을 터뜨렸다.

 

타오란은 그가 왜 그렇게 의기양양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의 대화를 잠시 곱씹던 타오란은, 어쩐지 소름이 돋아 고개를 저으며 차에서 내렸다.

……뤄원저우가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있었단 사실을 모른 채.

 

청광공관 같은 사유지가 아니라면, 시국 측에서 CCTV 영상을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버스 정류장의 CCTV는 허중의가 언제 청광공관 근처로 들어갔는지는 알려주지 못 했지만, 두 사람에게 커다란 성과를 안겨 주었다. 밤 9시 무렵, 허중이가 자갈길에서 나와 정류장으로 곧장 이동하더니, 몇 분을 기다린 후 34번 버스에 올라탄 것이다.

 

그가 그 사이에 고개를 들어 노선도를 살펴보았던 덕에, 뤄원저우와 타오란은 그가 허중이임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시각, 한 심리 상담 클리닉도 영업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내담자가 일어나 상담사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며, 정성스레 포장된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수고 많으셨어요, 바이 선생님. 이건 선생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상담사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페이두’라고 불리는 이 내담자는 언제나 남을 기분 좋게 하는 데 능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달콤한 말이 아낌없이 쏟아졌으며, 약속 시간에 늦거나 종료 시각을 넘기는 일도 없었고,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구는 경우도 없었다. 작고 과하지 않은 선물을 자주 챙겨와 청소 직원들까지 그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상담사가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그의 휴대전화가 두 번 진동했다.

 

상담사는 목 끝까지 올라온 인사를 삼키고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페이두는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시지가 두 개 와 있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아주 짧았다.

'고마워.'

두 번째 메시지에는 음성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건 답례야.'

 

페이두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음성을 들었다.

 

“만약에 네가 여자라면, 나랑 페이두 중 누구랑 결혼하고 싶어…… 다른 남자도 다 죽었어. 남은 건 우리 둘뿐이야.”

“그럼 너지, 뭐.”

“날 고른다고? 확실한 거지?”

“페이두는 아직 2개월 정도 모자라서 법적으로 결혼도 못 하는걸…… 너 뭐 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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