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줄리앙7
랑차오가 접이식 우산을 든 채 시국 청사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복도에 젖은 발자국을 남겼다.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에 바닥이 미끄러워 그만 앞으로 고꾸라질 뻔해 황급히 난간을 붙잡아 중심을 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마침 국장실이 있는 층에서 내려오던 뤄원저우와 눈이 마주쳤다.
뤄원저우의 얼굴에는 무거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랑차오가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잡으며 물었다.
“팀장님, 무슨 일이에요? 그런 표정 짓고 계시니까 조금 무서운데요.”
“오늘 타오란이랑 분국 안경잡이가 허중이의 룸메이트한테서 얻은 단서를 따라가다가 피해자가 죽기 전에 수상한 인물을 만났을 가능성을 발견했어.”
뤄원저우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사람은 근무 시간에 어떤 이유로 허중이와 다툼이 있었고 나중에 사과할 겸 휴대폰을 하나 건넸다는 거야.”
키가 큰 뤄원저우는 보폭이 넓어 성큼성큼 걸었고, 그 덕에 랑차오는 거의 뛰다시피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뇌수가 증발해버리는 것만 같아 멍해져서 되뇌었다.
“조금 다툰 걸로… 핸드폰을 준다고요? 전 매일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히는데 왜 아무도 제게 핸드폰을 사주지 않는 거죠?”
뤄원저우는 드물게 그녀의 농담을 받아치지 않았다.
“피해자가 일하던 배송 지점을 타오란이랑 안경잡이가 다시 조사했어. 그가 배달하던 경로를 전부 탐문한 결과, 어느 커피숍 체인에서 목격자를 찾았지. 며칠 전 허중이가 물건을 전하고 떠날 때, 가게 앞에서 누군가랑 몸싸움하는 걸 봤대. 마침 가게 CCTV에 그 사람의 차량 번호판이 찍혀 있었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심문실 앞에 도착했다. 단방향 거울 너머로, 타오란의 맞은편에 앉은 청년이 보였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듯한 남자는, 머리를 아마색으로 염색하고 알록달록하게 명품을 차려 입고 있었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억누르고 있는 게 뻔히 보일 정도여서 금방이라도 살기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 내가 그 찌질이를 한 대 친 적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지금까지 때린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이 사건이랑은 진짜 관계 없다고. 안 믿기면 페이두한테 그날 나랑 같이 있지 않았냐고 물어봐. 타오 형사, 말해두겠는데, 당신이 페이 형이랑 아는 사이니까 체면 봐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너희가 이런 식으로 날 잡아다 놓는 게 진짜 말이…”
거울의 건너편에서 랑차오는 기세등등하게 까부는 청년을 바라봤다.
“저게 두 번째 용의자예요? 왜 굳이 시국까지 데려왔죠?”
“피해자가 그날 저녁에 ‘청광공관’이라는 곳에 갈 거라고 말했거든. 안에 있는 저 사람이 바로 그날 그곳에 있었어.”
뤄원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 이름은 장둥라이, 이 지역에서 꽤 이름 있는 기업가 아들이지.”
“아, 재벌 2세군요.”
랑차오가 눈을 깜박였다.
“그래서요?”
“장 국장 조카야.”
“…”
멍해진 그녀가 머리를 재부팅하기도 전에 당직 경찰이 뛰어와 뤄원저우에게 속삭였다.
“뤄 팀장님, 페이두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타오 부팀장님을 찾으신다고 하세요.”
페이두는 음료를 건네준 경찰에게 정중히 감사 인사를 건네고, 한 모금 마신 뒤 곧바로 내려놓았다. 컵 안에 든 것이 인스턴트 커피인지라 이상한 참기름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시국 내부의 장식을 둘러보며 미적 감각이 엉성하다고 생각했다. 탁자 모서리에는 갓 칠한 듯한 냄새가 나는 페인트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뤄원저우가 안으로 들어서자, 페이두가 탁자의 무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음울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탁자 안에 시체라도 묻혀 있을 것 같았다.
페이두는 그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은 듯 간단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앉으세요.”
“….”
이 녀석은 시국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처럼 군다!
페이두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참기름 맛 커피를 휘저으며 물었다.
“타오란은요?”
“바빠.”
뤄원저우는 펜을 꺼내고 수첩을 펼치며, 상투적인 인사 한 마디 없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20일 저녁, 그러니까 그저께, 장둥라이랑 같이 있었어? 잘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페이두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약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두 다리를 성큼 벌려 꼰 채 앉아 있는 자세는 ‘무례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공간이 비좁고 답답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미묘하게 웃으며 뤄원저우를 바라보고 반문했다.
“뤄 팀장님, 제가 언제부터 용의자가 됐나요?”
뤄원저우가 싸늘하게 그를 흘겨봤다.
페이두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용의자도 아닌데 예의를 좀 지켜주시겠어요. 형사 소환은 강제가 아니잖아요. 기분이 상하면 그게 언제가 됐든 바로 돌아갈 거예요.”
“오.”
뤄원저우가 한 마디를 하며 펜을 탁 내려놓았다.
“그럼 내가 네 기분을 좋게 만들어줘야겠네? 말해봐, 어떻게 해줄까. 지금 당장 노래 한 곡이라도 불러줄까, 아니면 사탕 한 봉지라도 사줄까?”
어젯밤 경찰에게 사탕을 선물 받은 페이두는 할 말을 잃어 조용해졌다.
창밖에는 거센 바람과 빗방울이 창틀을 두드리며 요란하게 울부짖었고, 실내에서는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두 사람이 말없이 마주 앉았다.
잠시 후, 뤄원저우는 스스로도 유치하다고 느꼈는지 피식 웃어버렸다. 그가 담배갑을 꺼내 모서리를 툭툭 두드리며 불을 붙이려고 할 때였다.
“안 돼요.”
페이두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목이 좀 안 좋아서.”
뤄원저우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말을 못 하게 되는 날이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는 날이지.”
말은 그렇게 해도 뤄원저우는 결국 라이터를 내려놓았다. 그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서 몇 번 굴렸다.
“장둥라이는 그제 저녁 8시쯤 청광공관 근처에 널 마중 나가서, 자정쯤 네가 떠날 때까지 같이 있었다고 했어. 네가 증명해 줄 수 있을 거라고 했지.”
“저는 8시 전에 도착해서 12시 10분에 청광공관에서 나왔어요. 도착했을 때와 돌아갈 즈음에 장둥라이랑 인사를 하긴 했죠.”
페이두가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오너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제법 ‘다채로워서’, 그가 계속 제 시야에 있었다고는 할 수 없어요. 설령 그렇다고 말한들 당신은 안 믿을 거 아닌가요?”
뤄원저우는 괜히 담배 종이를 뜯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너희는 허구헌 날 붙어다니는 거 아니었어?”
페이두는 팔꿈치를 탁자 위에 괴고 몸을 약간 숙였다. 살짝 빗물에 씻긴 듯한 습기 어린 오 드 뚜왈렛의 향이 스며들었다.
“저는 다른 남자랑 애인을 공유하는 취미 같은 건 없거든요. 뤄 팀장님, 이런 시시하고 가식적인 질문만 계속하실 건가요? 그럼 전 그만 인사드리고 가야겠는걸요.”
“그런 것도 신경쓸 줄은 몰랐네.”
뤄원저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비꼬듯 말하더니 덧붙였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날 장둥라이가 청광공관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줄 수는 없다는 뜻이네.”
“못 하죠. 하지만 증명해줄 사람은 있어요. 필요하다면, 그날 밤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을 두 시간 안에 전부 불러올 수 있어요. 한 사람당 핸드백 하나 정도 안겨주면 심부름 값으로는 충분하겠죠.”
뤄원저우는 펜 끝으로 탁자를 콕 찍었다.
“지금 돈이랑 여자로 위증할 거란 소리야?”
“무슨 문제가 있죠? 몇 명이 위증을 한다 해도, 여러분 같은 엘리트면 그정도는 가려낼 수 있지 않나요?”
페이두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장둥라이가 범인이 될 수 없는 이유예요.”
페이두는 다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러원저우와 거리를 벌리더니, 특유의 나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약 장둥라이가 죽였다고 해도, 그가 직접 손을 대는 건 어리석은 짓이에요. 그는 얼마든지 사람을 시켜 피해자를 끌고 가서, 불법 감금이든 은밀하게 죽이는 방법이든 다른 수를 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화시 서구에는 떠도는 사람들이 많아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말도 없이 사라지는 곳이죠. 한 명쯤 없어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 할 거예요. 신고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준법 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소리에, 뤄원저우는 페이두라는 이 쓰레기 같은 놈을 붙잡아 패고 싶어 손바닥이 근질거렸다. 그는 겨우 성질을 억누르다가, 끝내 펜 끝으로 종이를 찢어버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 분노의 흔적이 남았다.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를 때는 보통 ‘이성적’이지 않아.”
“아, 충동적인 살인을 말하는 거군요.”
페이두가 잠시 멈추더니 물었다.
“피해자의 몸에 기절할 때 맞아서 생긴 상처 말고, 둔기에 의한 다른 상처는 없었나요?”
“지금 질문하는 사람은 나지 네가 아니야.”
“그 반응을 보니 정답은 ‘없다’인가 보네요.”
페이두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충동적인 살인이라면, 범인의 감정은 폭발적이죠. 보통은 분노가 한순간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폭발적으로 분출돼요. 이미 땅에 쓰러져 반항할 힘도 없는 피해자라면, 일반적인 경우, 머리가 박살난 수박처럼 되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목을 졸라 죽였다?”
그는 팔꿈치를 팔걸이에 괴고, 손끝으로 턱을 받친 채 웃었다.
“교살이라는 건, 모든 과정을 음미하듯 즐기는 방식의 살인이에요. 때때로는 약간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죠. 목이 타들어 가는 사람이, 자리에 앉아 ‘차 맛을 음미’할 여유가 있을까요? 저는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뤄원저우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너한테는 살인이 ‘차를 음미’하는 거란 말이지.”
“비유일 뿐이에요.”
페이두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장둥라이는 사람을 죽이지 않을 거예요. 설령 죽인다 해도 시체를 버리지는 않을 거고요. 버린다 해도, 자신이 전혀 모르는 서구의 좁은 골목에다 두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건 이성적인 관점에서 본 거예요. 직관적으로 보자면, 장둥라이라는 놈은 허약하고 나약해서, 화내봤자 길거리에서 욕이나 쏟아내는 게 전부일 거예요. 그에게는 살인을 저지를 배짱도, 심리적 자질도 없어요.”
그가 저 자리에 앉아 내뱉은 모든 말 중에 마지막 한 마디만이 비로소 사람 말처럼 들렸다.
장둥라이는 장 국장의 형이 가진 늦둥이 아들이다. 집안 형편도 좋고, 응석받이로 자라 예민하고 쓸모없는 도련님이었다. 뤄원저우도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살인을 저지를 담력과 심리 상태는 없어 보였다.
나머지는 전부 경찰이 조사할 문제였다. 페이두에게서 더 알아낼 정보도 없었기에, 뤄원저우는 수첩을 덮고 일어서려 했다.
“잠시만요.”
페이두가 뤄원저우의 등을 향해 불쑥 말을 걸었다.
뤄원저우가 돌아서자, 작은 물건이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페이두가 던진 것을 받아보니, USB가 하나 있었다.
페이두가 말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쉬운 형사 사건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로는 테러 같이 규모가 아주 큰 사건이에요. 이건 뉴스죠. 둘째로는 연쇄살인처럼 수법이 괴상하거나 잔혹해서, 도시 괴담 같은 색채가 짙은 경우예요. 이건 호기심을 자극해요. 셋째로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학생이나 직장인, 얌전히 사는 중산층처럼 범죄와 관련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피해자인 경우예요.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자신을 대입하면서 집단적 공포가 발생하거든요. 마지막으로 공권력, 특권, 도덕적으로 결핍된 엘리트가 가득 쌓인 사회적 불평등을 자극하는 경우예요. 이건 화제성을 얻기 쉽죠.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 중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데, 처음부터 비정상적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멀리서 사라질 듯한 천둥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지며 그의 말끝에 긴 꼬리를 달았다.
“이런 비정상적인 주목은 보통 오래가지 않아요.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장둥라이가 다시 끌려 들어왔어요.”
페이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뤄원저우 옆을 지나치며 조용히 말했다.
“우연일까요, 아니면 누군가 일부러 당신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있는 걸까요?”
뤄원저우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고맙단 말은 필요 없어요. 전 타오란 때문에 온 거니까요.”
페이두는 우산을 집어들고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어 나갔다.
“페이두.”
뤄원저우의 목소리가 불쑥 울려퍼졌다.
“다음 주였지? 딱 7년이 지났어. 이제 다시 시작할 때도 됐잖아.”
페이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곧장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