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줄리앙6

제7장 줄리앙6

 

“타, ……타오 부팀장님!”

 

타오란이 고개를 돌리니 분국의 그 ‘입담 좋은’ 작은 안경잡이 샤오하이양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어제 부러진 안경을 새로 맞출 겨를도 없던 샤오하이양은 광대뼈 아래로 떨어진 안경을 비뚤게 쓰고 있었다. 그가 타오란 앞에 멈춰 서서 가쁘게 숨을 내쉬는 모습에, 타오란까지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했다.

샤오하이양은 방금 막 리프팅 시술이라도 받은 것처럼 뻣뻣하게 당겨진 얼굴을 한 채, 손바닥에 찬 땀을 바지에 닦아내더니 간신히 안경을 바로 세웠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 메모장을 꺼냈다.

“타오 부팀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온화한 타오란은 그가 숨을 고를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말해.”

 

“그게, 어제 서구 쪽을 조사하다가 그 일대는 계절에 따라 세입자가 수시로 바뀌거나, 직장을 바꾼 뒤 이사 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쉐어하우스라기보단 조건이 나쁜 중장기 여관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그래서 서로 돌봐주는 동향이 아니라면 주민들끼리 별로 친하지 않고, 이렇다 할 관계성이 없더군요. 어제 동료들이 하루 종일 고생했지만 쓸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타오란은 그를 격려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허중이의 룸메이트 중에 그와 같은 성省 출신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샤오하이양이 메모를 뒤적였다.

“자오위룽이라고 합니다. 피해자와 친밀한 사이로, 허중이가 하고 있던 배달 일도 그가 소개해 준 거라고 합니다. 마샤오웨이가 말하길, 그가 이틀 전쯤 사정이 있어 고향에 돌아갔다고 합니다.”

 

마침 그 사람에게 연락해 볼 예정이었던 타오란은 놀라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샤오하이양이 말했다.

“어젯밤에 제가 그 커피 체인점의 배달 책임자를 찾아가 자오위룽의 연락처를 받아냈습니다. 그가 소식을 듣더니 어젯밤 장거리 버스의 막차를 타고 급히 옌청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오늘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타오란은 의미심장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난 지금 분국의 수사가 마샤오웨이에게 집중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샤오하이양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는 무심코 셔츠 자락을 당겼다.

“저… 저는 피해자에게 휴대폰을 준 그 신비한 인물이 어딘가 수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마샤오웨이를 범인으로 단정하기엔 의문점이 너무 많습니다… 이 상황을 저희 팀장님께도 보고드렸는데요… 팀장님은 제가 건방진 소리를 하면서 쓸데없이 일을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자 온화하던 타오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약속은 몇 시야?”

샤오하이양이 짧게 소리를 내며 시계를 보았다.

“장거리 버스가 늦게 도착하지 않는다면, 한 시간 뒤입니다.”

 

타오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같이 가지. 가자!”

 

말단 형사들이 땡볕에 시달리며 골목을 누빌 때, 페이 선생은 사무실의 가죽 의자에 등을 기대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가볍게 이마를 짚고선, 책상 위 노트북 화면에 뜬 허중이의 짧고 시시한 이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이두는 연락처 하나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창 형, 저예요.”

페이두는 전화기 너머의 말을 듣곤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네, 죄송하지만 부탁할 게 있어서요.”

 

30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바로 청광공관이 개업하던 그 날 밤, 주변에 있던 CCTV 기록이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페이두는 탕비실 전자레인지에 달달한 우유를 데우며, 비서의 패션 센스를 가볍게 칭찬한 뒤, 그녀에게 밥을 잘 챙겨 먹고 살은 빼지 말라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자기 사무실 문을 잠그고 헤드폰을 쓴 채, 차 안에서 듣던 노래를 반복 재생하면서 A4 용지를 꺼냈다.

그는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간단한 지도를 그렸다. 그 뒤에는 펜을 돌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몇 군데에 동그라미를 치고, “20시-21시 30분”이라고 적었다가, 잠시 후 다시 “20시”를 “20시30분”으로 고쳤다.

 

페이두는 산더미 같은 CCTV 기록 중 몇 개를 골라 이어 붙이고, 8시 반부터 9시 반까지의 구간을 선택해 빨리감기로 돌려보았다.

화면 속에서 여러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는 태연하게 의자에 기대 앉아, 온 정신을 눈에만 집중시킨 것처럼 꼼짝 않고 화면을 응시했다.

 

그 시각, 뤄원저우는 서류 가방을 들고 요란한 선글라스를 낀 채, 화시구의 한 교통 요충지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종종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모두 빈 차가 아니라 잡히지 않고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던 화시구 명물 불법 택시 기사들이 이를 보고는 일제히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잘생긴 형씨, 타고 가실래요?”

“어디로 가세요?”

“택시보다 훨씬 싸고, 빨리 갑니다!”

 

뤄원저우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불법 택시 무리를 훑어보고는, 상고머리 청년 앞에서 멈췄다.

청년은 눈치 빠르게 문을 열며 열정적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타세요, 어디로 가시나요?”

 

뤄원저우는 대꾸하지 않고 몸을 비껴 앉았다.

청년은 에어컨을 켜고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손님, 그래서 어디로 가시겠어요?”

 

“그냥 아무 데나 가.”

선글라스를 벗은 뤄원저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백미러 너머로 운전사와 마주쳤다. 순식간에 얼굴이 굳은 운전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여기 익명의 제보 자료가 있어.”

뤄원저우는 한참을 이동한 뒤 느긋하게 서류가방을 열어 복사본 한 부를 꺼내고선 대충 넘겨 봤다. 일순 운전사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동요하며 옆 차와 스칠 뻔했고, 긴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뤄원저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나는 너희 분국 사람이 아니야. 당황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한편, 타오란과 샤오하이양은 무사히 허중이와 같은 고향 출신인 자오위룽을 만났다. 세 사람은 함께 작은 국수 전문점에 들어갔다.

자오위룽은 중년을 넘긴 남자로, 옌청에서 오랫동안 고생하며 살아왔으나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듯했다. 그래도 사방에서 부딪히며 떠도는 젊은이들보다는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열 몇 시간동안 장거리 버스를 탄 피로가 가득했고, 두꺼운 눈밑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흔들렸다.

“그 애가 이런 일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형사님,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금연 규정 따위가 없는 국수집은 사방이 연기로 자욱했다. 자오위룽은 깊이 두 모금을 빨아들이고 얼굴을 문질렀다.

“중이는 성실한 애였습니다. 틈만 나면 당구장이나 도박판에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애는 그런 곳에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모은 돈을 집에 가져가 어머니의 병을 고쳐드릴 거라고 했지요. 절도도, 싸움도, 도박도 안 했습니다. 사고를 칠 리도 없던 애가 왜 하필 이런 일을 당해야 했던 건지… 두 분이 궁금하신 게 있다면 제가 아는 한 절대 숨기지 않고 모두 답하겠습니다.”

 

타오란은 그를 유심히 살폈다.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은 오른손으로 들었지만, 담배를 잡는 손은 왼손이었고, 찻잔의 손잡이는 왼쪽을 향헸다. 예전에는 부모가 왼손잡이 자식들을 억지로 교정시키는 경우가 많았으니 흔한 일이기는 했다.

타오란은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피해자가 신었던 신발의 사진이었다.

“이 신발은 당신이 허중이에게 빌려준 게 맞습니까?”

 

사진을 내려다보던 자오위룽의 눈가가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제 거예요. 그 아이가 이 신발을 신고 나간 겁니까?”

 

“네. 이 신발은 아주 중요한 단서예요.”

타오란이 물었다.

“피해자가 왜 이 신발을 빌렸는지 아십니까?”

자오위룽은 멍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꽤 고급스러운 곳에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했습니다. 뭐라 했더라… 청광 빌딩인가, 별장이랬나…”

 

샤오하이양이 벌떡 일어섰다.

“청광공관!”

“맞아요, 맞아요. 거기예요.”

자오위룽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죠? 무슨 일로 간다던가요?”

자오위룽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들은 게 없어요. 중이는 할 말을 잘 가리는 편이었으니, 제가 물어도 말해주지는 않았겠지만요.”

 

샤오하이양이 급히 물었다.

“자오 선생님, 허중이가 새 휴대폰을 갖고 있었죠?”

 

“아, 맞습니다.”

자오위룽이 대답했다.

“하얀색이었지요? 평소엔 아깝다고 거의 쓰지 않고, 늘 예전부터 쓰던 낡은 핸드폰을 썼습니다. 새 거는 가끔 꺼내 보는 정도였어요. 보호필름을 몇 겹이나 붙여놨더군요.”

 

샤오하이양이 물었다.

“그 휴대폰, 누가 준 건지 아십니까?”

 

자오위룽은 조금씩 미간을 찌푸렸다. 타오란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처음엔 동향 사람이 준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여태껏 옌청에 아는 동향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혹시나 그 애가 어수룩해서 나쁜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비싼 걸 사준다니 수상하지 않습니까?”

자오위룽은 재를 털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집요하게 캐물었더니, 나중에야 말하더군요. 배달하다가 어떤 사람이랑 약간 다퉜는데, 그 때 맞기만 하고 되받아치지는 않았다고요. 그 후에 상대방이 미안하다며 사과 겸 보상으로 휴대폰을 준 거라고 했습니다.”

 

타오란과 샤오하이양은 눈빛을 교환했다. 이전 탐문 조사에서는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왜 숨겼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허중이는 왜 얼버무리며 ‘동향 사람이 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을까?

함께 사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몸싸움이 심각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상대는 사과와 함께 고가의 물건을 내밀었을까?

 

피해자의 개인 관계만 조사하면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던 사건이 일순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자오위룽은 휴대폰의 정확한 출처를 알지는 못했지만, 다툼이 일어난 대략적인 시점은 알려주었다. 타오란과 샤오하이양은 그 단서를 좇아 허중이가 다니던 배달 회사를 찾아가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자 맑던 하늘이 예고도 없이 변했다. 사방에서 몰려든 먹구름이 거만한 햇빛을 휘감았고 바람 속에 눅눅한 습기가 섞였다. 곧 소나기가 쏟아질 듯했다.

 

한 지하철역의 출구 근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뤄원저우는, 곧장 떠나지 않고 문에 손을 댄 채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시선이 스치자, 길모퉁이에 서 있던 밴 한 대가 도둑처럼 슬그머니 움직이며 천천히 멀어졌다.

 

뤄원저우는 몸을 약간 숙여 반쯤 열린 창문 너머로 운전사에게 속삭였다.

“누가 널 지켜보고 있어. 조심해라.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날 찾아.”

차가운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불법 택시 기사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뤄원저우는 그를 깊게 바라보다 몸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나쳤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타오란, 어떻게 됐어?”

뤄원저우는 카드를 찍으며 승강장에 들어섰다가 불쑥 발걸음을 멈췄다.

“뭐라고? 그 이름 다시 말해 봐.”

 

페이두의 사무실 창문이 “쾅” 하고 바람에 닫히며, 몇 장의 종이가 바닥으로 흩날렸다. 그때까지 마우스를 느슨하게 쥐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번쩍 움직였다.

 

페이두는 CCTV에 잡힌 한 장면을 정지시킨 뒤, 확대했다가 되감았다. 시간은 대략 밤 8시 50분쯤이었다.

 

그건 청광공관의 바깥에 있던 카메라였다. 화면에 잡힌 건 자갈길 하나였다.

근처에 연못이 있어 초여름인데도 모기가 극성스러웠던 탓에, 해가 지면 지나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흐릿한 그림자 하나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있었다.

키가 크지 않고 마른 체형의 그 사람은 썩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제자리에 서서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고, 품에는 갈색 서류봉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가끔 고개를 들어 한쪽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러다 전화를 받아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허겁지겁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페이두는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봤으나, 자신이 스치듯 만난 피해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차 키를 집어 들고 컴퓨터를 끈 뒤 사무실을 나섰다.

 

40분 후, 페이두는 화시구 중앙 상권에 도착했다.

 

그는 점점 더 어둡게 가라앉는 하늘을 올려다본 뒤,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들고 청광공관 근처의 경관지대로 걸음을 옮겼다.

 

방향 감각이 탁월한 페이두는 길을 헤매지 않고 곧장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곳을 찾아갔다.

공기 중에 쌓인 습기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무겁게 맺혀 있었다. 페이두는 카메라의 위치를 세심하게 살핀 후, 영상 속 인물이 고개를 돌렸던 방향을 떠올렸다. 몸을 돌리자 좁은 길 끝으로 희미하게 청광공관이 보였다.

 

페이두의 시선은 그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멈췄다. 꺼진 담배꽁초 몇 개가 자갈 위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물고 쓰레기통도 말끔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버리지 않아 청소부도 열흘에 한 번 정도만 들르는 듯했다. 페이두는 주머니에서 비단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레 담배꽁초들을 집어 들었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페이두는 침착하게 꽁초를 싸서 넣은 뒤에야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입을 열기도 전에 웃음이 번졌다.

“어쩐 일이에요? 겨우 하루 못 봤다고 제가 그리워졌나요?*”

*원문은 如隔三秋로, 3년이나 못 본 것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타오란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그저께 밤에, 청광공관에 있었어?”

 

“네.”

페이두가 잠시 멈칫했다.

“무슨 일이에요?”

 

“혹시 장둥라이라는 사람이랑 같이 있었어?”

 

페이두는 순간 멈칫했다. 대답할 틈도 없이 벼락이 땅을 갈라놓듯 터졌고, 곧이어 폭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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